언어란 체험과 인지에 기반한다. 불교식으로는 오온이 언어 기반이 된다.
생활이 다르면 언어의 차이로 번역이 불가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라는 우리말은 한자로 번역되기 어렵다 그래서 나 오吾를 써서 오등吾等이라고 썼다.
한자가 지식을 대표하는 조선 직후라
기미독립선언의 시작도 '우리는' 이란 말을 쓰지 않고 오등吾等은 이라고 썼다.
한자로 조어특권 누리던 우월 버르장머리가 남아서 그렇다.
한자와 범어는 더 차이가 컸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어인지라 지금의 의미와도 차이가 크다.
인도의 사고체계와 한자의 의미개념이 너무 달라서 직역이 불가할 정도다(빠알리어 번역 보면서).
무아無我 - 아낫따 an-Atta(빠알리), 안아트만an-Atman(산스크리트)의 한문번역
Atta,Atman은 변하지 않는 독립적 존재 그것에 an은 '아니다'의 부정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각되는 나 Atta,Atman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것이 불변독립이란 것을 부정한 것이다.
在,存,體 이런 말들은 애초에 체험,인지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의 의미로 쓸 때는 本을 붙인다. 근본이 그래서 체험,인지가 그랬다의 뜻을 담고 있다.
본本, 실체實體 란 말을 쓸 때도 체험에 따라 인지에 변화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드러났다는 뜻이지,
그것이 작용에 따라 어떻게 체험이 예측가능하다는 것이지 고정됐다는 의미는 희박하다.
왜냐.. 이쪽 문화는 계속 체험되듯 자연은 변화한다는 것을 깔고
음양, 오행, 역, 모두가 변화를 설명하는 문화다.
거기에 그렇게 되는 이유와 규칙성이 있다는 의미로 리理를 쓴다.
그렇다고 이걸 다 받아들였냐? 아니다. 왜냐
꼭 그렇게만 되는 게 아니었거든.
한자의 구성
我는 발음에 따라, <-'아'라는 나,자기의 뜻을 가진 말이 있었나보다
吾는 口가 입,먹다,말이 뜻에 五가 소리다.
다시 무아無我 를 보면 我는 이상하다.
Atta는 개체個體, 자기自己, 영혼靈魂 이런 말에 더 가깝다.
한글자로 떨어지는 한자는 짧은 지식으로 못찾겠다.
기己가 있는데 이것은 몸이란 나란 의미를 깔고 있으니 이것이 더 적합하다 하겠다.
인도의 힌두,브라만 사상에는 현상계에 현현하는 것 안에 아트만 있다고 생각했으니
기己 이것이 주관으로든 대상으로든 더 가깝다 하겠다. Atta - 기己
an은 부정어. 영어에서도 쓰인다.
한자로는
부不,弗-아니다
미未-아니다,아직~못하다
비非-아니다,그르다,나쁘다
무無,无-아니다非,없다,않다不
부否-아니다
물勿-아니다,없다, 말다
피彼-아니다怫,저,그
모毋-아니다不,말다
부𠀚-아니다
비匪-아니다,떼도적
중에서 부不,弗이 일반적이다. 不己 약간 고어적으로 弗己이겠지만
불교는 '아니므로 그런 건 없다'의 의미가 강하므로 무기無己가 적합하다 하겠다.
무아無我 -> 불기弗己 또는 무기無己
* 佛 - 人 + 弗 -> 사람 아님?
불교가 부정하는게 많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되지만
붓다를 발음이 비슷한 弗를 취하고 사람을 뜻하니까...쓰게 된거라.
법法 - 자연의 또는 보편적으로 체험되는 원리,이치,질서,법칙 등의 의미
다르마Dharma[담마Dhamma]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 ...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위...
지켜야할 고귀한 것
삶에 대한 가르침
물질적.정신적 모든 현상
인도의 담마Dhamma, 지나국의 법法은 주술의 시대에 권위를 가지려는 온갖 것이 녹아 있는 단어다.
불교적 의미에는
진리와 그 합리성
법칙과 그 보편성
인간의 도덕.윤리
붓다의 가르침
실상과 진리
사물
현상
깨닫는 방법
석가모니부처가 말을 헛갈리게 한 것인지 제자들이 혼란하게 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체로 진리,사물,현상, 붓다의 가르침 정도로 되는데 최소한 말할 때
지금 말하는 법法 이런 의미다를 어눌이 하던가.
...로써의 법法이라 수식하던지
더 간명하게 ...을 직접 쓰던지
스님도 말의 정연함 있어야 한다. 누가 지맘에 들려고 말듣나? 듣는 나 도움 되라고 듣지.
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 붓다 가르침의 주석, 논장
담마湛磨 담마談磨 담마𤯌磨 이런 조합도 가능했을텐데...지나국 소리가 또 시대가 그렇다 하니...
그런데 리理를 쓰지 않고 법法을 썼을까.
다른 뜻은 수렴되어도 '사물'의 뜻은 수렴할 길이 요원하다.
리理는 사물物의 돌아가는 원리라는 뜻이지만 법法이 사물로 되는 것은 엉뚱하다. 이때는 물物이 더 적합하다.
그런데
한국불교가 따라 주창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 法은 '사물'을 가리킨다.
제법무아諸法無我 -> 제물불기諸物弗己 또는 제물무기諸物無己
물物의 뜻이 법法이란 글자에 없다 해도
제법무아諸法無我 -> 제법불기諸法弗己 또는 제법무기諸法無己
이 정도가 가깝다 하겠다.
해 놓고 보니 뜻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많이 다르다.
연기에 의해 나타난다 또는 존재한다는 불교의 기반이 없으면
말로 다가오는 느낌... 생소함인지 조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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