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일 일요일

유교가 기독교를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

유교는 참 이율배반적이다. 그리고 신분제의 강압의 근거로 사용하였다.
어려운 글자 마저도 배울기회를 박탈해 놓고 '그것도 모르면서...'라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속이고 빼앗고 고혈을 빠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공자가 그러라고 시키디?
공자도 책 읽고 공부하다가 이렇더라, 그러니 이랬으면 하네... 라는 것이었잖아.
근데 쓰는 놈들은 잔혹한 도구로 썼잖아.

쟁투기에서 중세 조선의 암흑기로 ...

신성을 주장하고 싶으면 신성부터 보여라. 
기독교는 빨아 먹던 로마제국의 도구가 되면서 초장부터 변질 되었다.
그래서 장구한 전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런 면에서 유교는 기독교에 비하면 까마득한 아래고
초록은 동색이라 비판하지도 못한다.

들어보면 유교가 학문적으로 좀 심오하다 싶은 거는 
불교의 것을 선별적으로 축소되어 용어 바꾸기에 불과한 것들이 허다하다.

불교를 탄압한 목적도 결국 그들이 누린다고 여기던 것들을 빼앗기 위한 목적이었다.
불교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개선하는 쪽으로 정리해주지 못했다.
그럴 역량이 안됐으니까... 그래서 한 것은 빼앗기...

사람이 다양한 만큼 크고 다양한 세계관을 제시해 주지도 못했고
더 좁아지다 못해 차단된 경우가 너무 많다.

노자 기준으로 조선왕조를 보면... 

역사도 그렇다.
도대체 진짜 고려나 그전의 삼국은 어땠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대대손손 오래오래 해 먹고 싶어서
풍수로 좋다는 자연환경은 다 독점하려 했다.

불가 승의 다비와 부도보다 훨씬 낭비적이다.

음택은 공부터로만 썼어야 했고
양택은 공용으로 활용되었어야 했다.
그것을 관청이 독점하는 것도 좋지 않다.
권력이 언제 바르기만 하던가?
권력은 기본적으로 강압이고 
언제든 가혹해질 수 있어서 양택을 점유하면 나쁜 것을 더 키우게 된다.
많은 군.관청들이 좋은 자리 점유했다.
관청은 평하고 편리한 자리에 편재해야 한다.

체제를 정비하더라도 좋은 양터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되어야 했다.

왕 무덤 잡는데 높은 관료가 지명되고, 
유교가 자랑하는 것과 거리가 먼 온갖 것을 다 동원하여 사사로움을 추구하였다.

옛날 고관대작 명당 설화는 와 닿지 않겠지만
가까이 살아온 시대, 명당의 혜택을 입었다는 자들이 뭐 얼마나 이 사회에 좋은가?

경제 논리로 누군가 돈을 많이 벌면 배 아픈 건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편차를 증가시킬 것이고 자본에 의한 기회를 박탈 당하는 것이 때문이다.

고용되어 살아가는 삶은 기본적으로 불편하다.
먹는 것을 위해서 자신을 얽어 매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인구는 많고 치밀하고 활발하게 살아서 전개되어야 할 체제가
구닥다리 관념으로 굳어져서 결국 불행한 시기를 맞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제나 그랬지만 눈 뜨고 보면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워 살아가기 참 어렵다.

그래서 난 지금 윤회를 믿지 않는다.
그만큼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불가에서도 해탈을 이야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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