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7일 화요일

만가지 의미의 단어 - 마음이 무엇인가...

이 만萬가지 보이지 않는 모양의 단어 - 마음.

먼저 정리하면 이렇다.

마음이 이렇다 저렇다의 표현에는 생략된 것이 있다.
마음에 ..... 일어났다.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에 편안함이 일어났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에 아픔이 일어났다.
마음이 답답하다. 마음에 답답함이 일어났다.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에 불편이 일어났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마음에 홀가분함이 일어났다.
그 사람은 맘씨가 좋다. 나의 마음에 그 사람의 맘씨좋음이 일어났다.

마음에 만상이 지나간다.
불교를 한마디로 줄이면 마음이라고 한다. 그때 마음이란 말이 이 마음이다.
이런 것도 없이 바로 마음 마음 하면 듣는 사람은 각자 해석하게 돼서 혼란스럽다.
답답한 일이다.
이 마음은 의식,생각이라 이름할 때도 있다. 역시 두루뭉스르한 말이다.

사람마다 말을 하는데 쓰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이하는 읽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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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6근根=감각기관 6경境 6식識

눈-빛-봄
귀-소리-들음
코-냄새-맡음
혀-맛-맛
몸-닿음-느낌
뇌-뜻.생각-앎

이것을 앞 5개를 전5식이라 하고

이 5개 각에 대해 일어나는 이어지는 반응을 의意식識 이라고 한다고...

*촉觸 
뜨거움,차가움,메마른,축축한,까칠한,따가운 등의 피부와
눌림, 충격, 뒤틀림, 엉킴 등 근육으로 느껴지는 것들.

몸에 눈.귀.코.혀가 있고 촉觸 닿음은
빛.소리.냄새.맛도 다 촉觸이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즉 촉觸과 식識으로 간단히 볼 수 있다.

도道.선仙 의 내경은 전혀 다르게 부정관으로 펼쳐진다.

식識은 기억,생각,분별,판단,감정을 다 아우르는 애매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 의식. 생각 뭐지? 다 혼란스럽게 말한다.

불교도 유식唯識, 유심唯心이란 단어가 나오고.
어찌보면 생각思은 정리되지 않고 반응.작용 정도의 떠돌이처럼 쓴다.

이렇게 작용하는 것을 퉁하여 마음이라 하는데

유식체계는 깊은 3개의 식을 더한다.
7식識은 감정, 마음
8식識은 변화를 알아차림
9식識은 순수의식.청정식.본성
9식이 가장 아래 근본이며 8식은 9식에서 나오고 7식은 8식을 거친다고...

불교의 마음이란 단어는
확장인지 비틀기인지 재정의인지 전제바꾸기인지  인지교정인지
그 마음 말고 근본마음(8.9식)... 불교는 한마디로 마음 등.
쉽게 말해 저 각覺 알아차리는 걸 마음이라고
다시 마음이란 단어를 일반의미와 다르게 사용한다.
(지각과 식별 중에 지각 - 혼용하는 것 같기도...)

이 경계 없이 내부적인 상상만으로도 일어나는 반응이 꿈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 포함하면 근심,걱정,공포...
수만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졸--------

마음 마음 해 대는데
개인적으로는 의학에서 신경계다.
신경계는 바로 아는 것도 있고 인지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선정이나 관찰과 사유를 통해
모르는 영역도 알게 되고 
그것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관계도 알게 되어
원리를 알게 된다.

선가仙家 쪽이 더 우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본래 마음은 8식 쯤
무심無心은 9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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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학상식으로는 신경 자극에 의한 반응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몸의 체계는 상상 밖으로 복잡하다.
(골격계,혈관계,근육계,소화계,분비계,신경계,호흡계,배설계,생식계,피부계,면역계 아따...)

그런데 
생각(새김:되새김질)해보자

몸이 있기 전에 이런 반응이 있었나?
몸이 있고 많은 경계에 부딛혀서 그 정보가 쌓이고 알아차림이 있고 하는 것이지...
몸은 생명체계이고 생명은 나고 자라고 발달하고 늙고 아프고 죽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몸의 반응이다.
어린시절이라지만 자라는 변화가 빠르고 청소년기부터 더 복잡해진다.

결국 보인다는 몸도 의사들도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고
그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들에서 일어나는 반응인 마음이란 것은 말해 뭐하랴.

반응이 있는 줄 알지만 그게 뭔지 모를 때 
대응하는 반응도 살아가는 삶이 다양한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마음은 모르겠다고 하고
다만 변한다고 하고 
변하니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해 지나가게 내버려 두라 그게 현명하다고 한다.

결국 몸,맘은 하나에 대한 다른 이름인 것 - 둘 다 잘 모른다.
다만 몸의 체계가 원만하게 잘 돌아가면
몸도 없는 것 같고,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어느 경계로부터 반응이건 아니면 상상으로의 반응이건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몸이 먼저냐 맘이 주이냐. 이런 질문들을 하곤 하는데
시체는 몸이 있는데 맘이 주인 같다..고 한다면
몸 없이 그 맘이란 것이 생겼나? 반문도 가능하다.

생각이란 것도 내부적 변화가 있다.
그것을 뇌신경변화를 자료화하고 
분석해서 정보를 추출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보인다고 여기는 부분을 몸, (보이지 않고) 느끼는 부분을 마음이라 한다.
생명체계는 생존과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반응한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내부적 경계를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 몸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생존에 대한 위협을 없애주고 원만한 몸의 흐름일 때 마음은 사라진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운 것
신비한 것은 그저 신비한 것
무료한 것은 그저 무료한 것
무슨 일이 일어나도 위험도 없고 원만할 때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태어나기 전과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말할 것은 없다.
당장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야기해도 되겠지.
즉 모르는 몸 이전과 몸 이후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황되다 할 것이다.

=========여기까지 가름이다.

윤회라는 것도 다시 태어나 나투는 이야기이다.
물질이 변화하여 재구성 되었다면 윤회인가?
영혼 형태의 맘(의식체계)이란 것이 다시 다른 몸을 갖는다면
그건 불교의 무아, 공이 거짓말이 된다.
무아,공이  윤회와 충돌하기 때문에 많은 말들과 설이 있다.

생을 건너는 것은 사실 확인이 어려운데
왜 이런 것을 방편으로 썼을까? 의문이다.

예를 들어 민간의 몇몇 예화가 사실이라고 해도
티벳 라마들의 환생이 사실이라고 해도
일반인들로서는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이적에 가까운 사실 확인 되면
그의 대상에는 신앙으로 전개된다.
티벳불교를 들어보면 이에 해당한다.

뒤집는 다른 설명이 있는데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본래마음, 참마음, 참나, 하나, 열반이라 이름 한다.
생각으로 추론할 수도 있고
허공처럼 느껴볼 수도 있다.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몸으로 있는데 몸 이후 일어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그것이다.
모양이 없지만 각覺(아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몸을 나투었다.
그것은 몸의 경계에 있기도 하지만, 몸 바깥도 인식하고 다룬다.
그것의 입장에서 보면 몸은 지나가는 것?
그것은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

이런 설명은 여래장(8식,9식)이라는 걸 활용한다.
그것이 현생의 개체 특성이 어떻게든 저장되는 곳이 있다는 것이고
윤회 한다고 한다. 역시 증명할 길은 없다.
개인이 처하는 환경적 조건 과보라고 한다.

어쨌거나 윤회라는 굴레의 장치는
다시 복종적 신앙이나 수행행위에 대한 빌미가 된다.

말 어렵게 하는 대승불교
공空 - 공이 텅빈 허공이 아니라 무자성... 말이... 어렵다.
공空 : 비다 없다 헛되다 뜻인데 불교해석만 다시 의미부여를 해서 꼬였다.

(번역될 당시는 비다 없다 원래 의미였을 것이다.
항상 원래의미에다 얹어 중의적으로 무자성이라 해 먹는다.
그네들이 읽거나 들었던 걸 그대로 읊는 것 같다.
그래서 정반대로 해석하잖아 그냥 없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렇게 대중을 희롱하고 존경하라고?
무자성無自性이란 뜻이라면 경에 대입을 해보라.
색과 그 성질만 이야기하는 것이 되잖아.
색즉시무자성 무자성즉시색 - 색이 무자성이고 무자성이 색이다. 이씨~ 
시고 무자성중무색 - 이와 같이 무자성에는 색이 없어...아놔~무자성)

그럼 변치 않는 자성을 가진 것을 들어야 하는데 - 허공과 열반이란다.
그것은 원인이나 대상 없이 그냥 있단다.

공空은 연기緣起(인연으로 일어남)없는 존재는 없다.
즉 모든 것은 연기로 존재할 뿐이다.
예외는 2가지 허공과 열반.

그럼 공空은 공空인가 공空이 아닌가?
공성空性은 공성空性인가 공성空性이 아닌가?

논리적으로 양비에 걸릴 수 있다.
공空이라면 공空이 공空이니 모든 공空도 뒤집힐 수 있고
공空이 공空이 아니라면 공空의 자기부정이 된다.

역시 공空도 허공과 열반처럼 연기제외?

희론은 낭비일 뿐...

공空은 방편설이고 도구이다 - 이 정도로...

서산,진묵 대사 이후로 한국의 불법은 끊겼다고도 한다.
티벳밀교는 끊김없이 이어져 온 대승불교 정통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자량도(資粮道, Sambhara: 깨달음의 준비, 밑천) 
가행도(加行道: 方便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

이런 체계를 갖추었다고 한다.
견도(見道)도 요즘 말하는 견성(見性)과 진정한 의미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때에 갖추어야 할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
티벳불교의 스승들은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방만한 인간문명을 변화시키고 방향을 제시하는가?
티벳불교의 형식이 여기에 부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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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두는

'이 모든 것이 왜 이런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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