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하면 괜찮은 비유같기도 한데
참나이론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대승 불교는 이것에 대한 관찰정밀도가 높은 것 같다.
허공계를 자각하면?되면?
인식.인지의 변화가 오는데
처음 자각할 때,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
허공계 매트릭스,
허공계
허공계를 인지.인식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인식체계의 변화가 올 수 있다.
개인적 체험은 각각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연기법,인연법으로 보면 당연하다.
연기에 의한 인연 조합으로 개개물물이라면 다 다를 것인데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생주이멸도 자연스럽게 들여지게 된다.
인지되는 모든 사물이 생주이멸하기 때문이다.
관찰은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교차검증으로 확인 할 수 밖에 없다.
허공과 물질에 대한 것이
대상으로든 존재인식으로든
인지,인식이 자연스럽다.
색이나 공이나 - 뭐 이런 식이다.
몸과 감각(촉각)으로 한정해서 가르던 인식체계도
순식간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자연스럽다.
물속에서 할랑거리던 몸으로 물을 느끼는 것처럼
허공을 인지,인식하고 느끼고 거리낌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승불교의 아공我空.법공法空.구공具空의 설명을 들으면
너무 편하고 쉽다.
본래부터 이랬다.
여기에 여러가지 표현이나 말이 덧씌워지면
사족처럼 걸리적거리고 거추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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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늘 무無 상태가 되면 그렇듯)
지금의 자기가 드러난다.
악惡인지 선善인지
그 어떤 자기인식도 교차검증될 수 있다.
그러니, 모르고 악행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악인은 항상 오 그래? 그렇게 잘 알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악행을 더한다.
어떤 형태의 악이던 가리지 않는다.
되지도 않은 자기 충동만 충족시키려 한다. 그런데 그게 될까?
선은 참 어렵다.
인지부터 정확하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제는 분명 옳고 좋고 맞는 것 같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달리 보이고 그것으로 보니 최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악은 좋지 않은 것이 검증되어도 계속한다는 거다.
악은 자기 탐욕이고 폭력이다.
선은 균형을 맞춰 조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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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쩌다 인간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바른 먹거리, 편안한 집
이런 거 합시다.
공해 0인 삶은 괴롭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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