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9일 목요일

12연기

12연기 -
12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연기 이야기다.

단순하게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김으로써 그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렇다.

석가의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다. 다른 말로 자각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봄을 깨달았다.

모든 힘이 가라앉고
모든 집착이 포기되며
갈애가 파괴되고 
탐욕이 사라지며
번뇌가 소멸되는 열반

7일간 3번

해탈의 지복을 누리고 난 후에 관찰했다는 것을 잊지 말...
해탈의 선정에 있다가 나오면서 관찰된 것.

이런 설명을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8B%AD%EC%9D%B4%EC%97%B0%EA%B8%B0%EC%84%A4

오온五蘊(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과 순서와 범위가 다르다.

무명 無明 - 알지 못함, 헤맴
행 行 - 몸,말,뜻 - 몸으로,입으로,생각으로
식 識 - 여섯가지 식
명색 名色 - 5온 명-수,상,행,식 색-물질
여섯 감각영역 感覺領域 - 여섯가지 들어 옴, 안이비설신의
촉 觸 - 봄,들음,냄새,맛,닿음
느낌 受 - 받아들임  - 고통, 즐거움,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갈애 渴愛 - 강렬한 사랑 - 욕망, 물질, 정신
집착 執着 - 잡음, 취取-바램,견해,계율,나我
존재 存在 - 있다,없다 유有
생 生 - 태어남, 화합
노사 老死 - 늙어 죽음...

율장 마하박가에는 아래와 같이 

생겨남 순으로
소멸하는 순으로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생겨나고
행을 조건으로 식이 생겨나며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며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생겨나며
여섯가지 감각영역을 조건으로 촉이 생겨나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렇게 모든 괴롬움의 다발들이 생겨나게 된다.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며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소멸하며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렇게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하게 된다.

2023년 6월 27일 화요일

만가지 의미의 단어 - 마음이 무엇인가...

이 만萬가지 보이지 않는 모양의 단어 - 마음.

먼저 정리하면 이렇다.

마음이 이렇다 저렇다의 표현에는 생략된 것이 있다.
마음에 ..... 일어났다.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에 편안함이 일어났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에 아픔이 일어났다.
마음이 답답하다. 마음에 답답함이 일어났다.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에 불편이 일어났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마음에 홀가분함이 일어났다.
그 사람은 맘씨가 좋다. 나의 마음에 그 사람의 맘씨좋음이 일어났다.

마음에 만상이 지나간다.
불교를 한마디로 줄이면 마음이라고 한다. 그때 마음이란 말이 이 마음이다.
이런 것도 없이 바로 마음 마음 하면 듣는 사람은 각자 해석하게 돼서 혼란스럽다.
답답한 일이다.
이 마음은 의식,생각이라 이름할 때도 있다. 역시 두루뭉스르한 말이다.

사람마다 말을 하는데 쓰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이하는 읽지 않아도 된다.

===

불교에서는 

6근根=감각기관 6경境 6식識

눈-빛-봄
귀-소리-들음
코-냄새-맡음
혀-맛-맛
몸-닿음-느낌
뇌-뜻.생각-앎

이것을 앞 5개를 전5식이라 하고

이 5개 각에 대해 일어나는 이어지는 반응을 의意식識 이라고 한다고...

*촉觸 
뜨거움,차가움,메마른,축축한,까칠한,따가운 등의 피부와
눌림, 충격, 뒤틀림, 엉킴 등 근육으로 느껴지는 것들.

몸에 눈.귀.코.혀가 있고 촉觸 닿음은
빛.소리.냄새.맛도 다 촉觸이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즉 촉觸과 식識으로 간단히 볼 수 있다.

도道.선仙 의 내경은 전혀 다르게 부정관으로 펼쳐진다.

식識은 기억,생각,분별,판단,감정을 다 아우르는 애매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 의식. 생각 뭐지? 다 혼란스럽게 말한다.

불교도 유식唯識, 유심唯心이란 단어가 나오고.
어찌보면 생각思은 정리되지 않고 반응.작용 정도의 떠돌이처럼 쓴다.

이렇게 작용하는 것을 퉁하여 마음이라 하는데

유식체계는 깊은 3개의 식을 더한다.
7식識은 감정, 마음
8식識은 변화를 알아차림
9식識은 순수의식.청정식.본성
9식이 가장 아래 근본이며 8식은 9식에서 나오고 7식은 8식을 거친다고...

불교의 마음이란 단어는
확장인지 비틀기인지 재정의인지 전제바꾸기인지  인지교정인지
그 마음 말고 근본마음(8.9식)... 불교는 한마디로 마음 등.
쉽게 말해 저 각覺 알아차리는 걸 마음이라고
다시 마음이란 단어를 일반의미와 다르게 사용한다.
(지각과 식별 중에 지각 - 혼용하는 것 같기도...)

이 경계 없이 내부적인 상상만으로도 일어나는 반응이 꿈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 포함하면 근심,걱정,공포...
수만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졸--------

마음 마음 해 대는데
개인적으로는 의학에서 신경계다.
신경계는 바로 아는 것도 있고 인지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선정이나 관찰과 사유를 통해
모르는 영역도 알게 되고 
그것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관계도 알게 되어
원리를 알게 된다.

선가仙家 쪽이 더 우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본래 마음은 8식 쯤
무심無心은 9식이라고 본다.
=========================

요즘 의학상식으로는 신경 자극에 의한 반응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몸의 체계는 상상 밖으로 복잡하다.
(골격계,혈관계,근육계,소화계,분비계,신경계,호흡계,배설계,생식계,피부계,면역계 아따...)

그런데 
생각(새김:되새김질)해보자

몸이 있기 전에 이런 반응이 있었나?
몸이 있고 많은 경계에 부딛혀서 그 정보가 쌓이고 알아차림이 있고 하는 것이지...
몸은 생명체계이고 생명은 나고 자라고 발달하고 늙고 아프고 죽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몸의 반응이다.
어린시절이라지만 자라는 변화가 빠르고 청소년기부터 더 복잡해진다.

결국 보인다는 몸도 의사들도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고
그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들에서 일어나는 반응인 마음이란 것은 말해 뭐하랴.

반응이 있는 줄 알지만 그게 뭔지 모를 때 
대응하는 반응도 살아가는 삶이 다양한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마음은 모르겠다고 하고
다만 변한다고 하고 
변하니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해 지나가게 내버려 두라 그게 현명하다고 한다.

결국 몸,맘은 하나에 대한 다른 이름인 것 - 둘 다 잘 모른다.
다만 몸의 체계가 원만하게 잘 돌아가면
몸도 없는 것 같고,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어느 경계로부터 반응이건 아니면 상상으로의 반응이건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몸이 먼저냐 맘이 주이냐. 이런 질문들을 하곤 하는데
시체는 몸이 있는데 맘이 주인 같다..고 한다면
몸 없이 그 맘이란 것이 생겼나? 반문도 가능하다.

생각이란 것도 내부적 변화가 있다.
그것을 뇌신경변화를 자료화하고 
분석해서 정보를 추출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보인다고 여기는 부분을 몸, (보이지 않고) 느끼는 부분을 마음이라 한다.
생명체계는 생존과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반응한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내부적 경계를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 몸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생존에 대한 위협을 없애주고 원만한 몸의 흐름일 때 마음은 사라진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운 것
신비한 것은 그저 신비한 것
무료한 것은 그저 무료한 것
무슨 일이 일어나도 위험도 없고 원만할 때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태어나기 전과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말할 것은 없다.
당장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야기해도 되겠지.
즉 모르는 몸 이전과 몸 이후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황되다 할 것이다.

=========여기까지 가름이다.

윤회라는 것도 다시 태어나 나투는 이야기이다.
물질이 변화하여 재구성 되었다면 윤회인가?
영혼 형태의 맘(의식체계)이란 것이 다시 다른 몸을 갖는다면
그건 불교의 무아, 공이 거짓말이 된다.
무아,공이  윤회와 충돌하기 때문에 많은 말들과 설이 있다.

생을 건너는 것은 사실 확인이 어려운데
왜 이런 것을 방편으로 썼을까? 의문이다.

예를 들어 민간의 몇몇 예화가 사실이라고 해도
티벳 라마들의 환생이 사실이라고 해도
일반인들로서는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이적에 가까운 사실 확인 되면
그의 대상에는 신앙으로 전개된다.
티벳불교를 들어보면 이에 해당한다.

뒤집는 다른 설명이 있는데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본래마음, 참마음, 참나, 하나, 열반이라 이름 한다.
생각으로 추론할 수도 있고
허공처럼 느껴볼 수도 있다.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몸으로 있는데 몸 이후 일어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그것이다.
모양이 없지만 각覺(아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몸을 나투었다.
그것은 몸의 경계에 있기도 하지만, 몸 바깥도 인식하고 다룬다.
그것의 입장에서 보면 몸은 지나가는 것?
그것은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

이런 설명은 여래장(8식,9식)이라는 걸 활용한다.
그것이 현생의 개체 특성이 어떻게든 저장되는 곳이 있다는 것이고
윤회 한다고 한다. 역시 증명할 길은 없다.
개인이 처하는 환경적 조건 과보라고 한다.

어쨌거나 윤회라는 굴레의 장치는
다시 복종적 신앙이나 수행행위에 대한 빌미가 된다.

말 어렵게 하는 대승불교
공空 - 공이 텅빈 허공이 아니라 무자성... 말이... 어렵다.
공空 : 비다 없다 헛되다 뜻인데 불교해석만 다시 의미부여를 해서 꼬였다.

(번역될 당시는 비다 없다 원래 의미였을 것이다.
항상 원래의미에다 얹어 중의적으로 무자성이라 해 먹는다.
그네들이 읽거나 들었던 걸 그대로 읊는 것 같다.
그래서 정반대로 해석하잖아 그냥 없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렇게 대중을 희롱하고 존경하라고?
무자성無自性이란 뜻이라면 경에 대입을 해보라.
색과 그 성질만 이야기하는 것이 되잖아.
색즉시무자성 무자성즉시색 - 색이 무자성이고 무자성이 색이다. 이씨~ 
시고 무자성중무색 - 이와 같이 무자성에는 색이 없어...아놔~무자성)

그럼 변치 않는 자성을 가진 것을 들어야 하는데 - 허공과 열반이란다.
그것은 원인이나 대상 없이 그냥 있단다.

공空은 연기緣起(인연으로 일어남)없는 존재는 없다.
즉 모든 것은 연기로 존재할 뿐이다.
예외는 2가지 허공과 열반.

그럼 공空은 공空인가 공空이 아닌가?
공성空性은 공성空性인가 공성空性이 아닌가?

논리적으로 양비에 걸릴 수 있다.
공空이라면 공空이 공空이니 모든 공空도 뒤집힐 수 있고
공空이 공空이 아니라면 공空의 자기부정이 된다.

역시 공空도 허공과 열반처럼 연기제외?

희론은 낭비일 뿐...

공空은 방편설이고 도구이다 - 이 정도로...

서산,진묵 대사 이후로 한국의 불법은 끊겼다고도 한다.
티벳밀교는 끊김없이 이어져 온 대승불교 정통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자량도(資粮道, Sambhara: 깨달음의 준비, 밑천) 
가행도(加行道: 方便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

이런 체계를 갖추었다고 한다.
견도(見道)도 요즘 말하는 견성(見性)과 진정한 의미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때에 갖추어야 할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
티벳불교의 스승들은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방만한 인간문명을 변화시키고 방향을 제시하는가?
티벳불교의 형식이 여기에 부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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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두는

'이 모든 것이 왜 이런가?'

이다.

2023년 6월 26일 월요일

참나이론은 허공계 매트릭스 자연스럽다

자각하면 괜찮은 비유같기도 한데
참나이론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대승 불교는 이것에 대한 관찰정밀도가 높은 것 같다.

허공계를 자각하면?되면?
인식.인지의 변화가 오는데
처음 자각할 때,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

허공계 매트릭스,
허공계
허공계를 인지.인식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인식체계의 변화가 올 수 있다.

개인적 체험은 각각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연기법,인연법으로 보면 당연하다.
연기에 의한 인연 조합으로 개개물물이라면 다 다를 것인데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생주이멸도 자연스럽게 들여지게 된다.
인지되는 모든 사물이 생주이멸하기 때문이다.

관찰은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교차검증으로 확인 할 수 밖에 없다.

허공과 물질에 대한 것이
대상으로든 존재인식으로든
인지,인식이 자연스럽다.
색이나 공이나 - 뭐 이런 식이다.

몸과 감각(촉각)으로 한정해서 가르던 인식체계도
순식간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자연스럽다.
물속에서 할랑거리던 몸으로 물을 느끼는 것처럼
허공을 인지,인식하고 느끼고 거리낌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승불교의 아공我空.법공法空.구공具空의 설명을 들으면
너무 편하고 쉽다.

본래부터 이랬다. 

여기에 여러가지 표현이나 말이 덧씌워지면
사족처럼 걸리적거리고 거추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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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늘 무無 상태가 되면 그렇듯)

지금의 자기가 드러난다.
악惡인지 선善인지
그 어떤 자기인식도 교차검증될 수 있다.
그러니, 모르고 악행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악인은 항상 오 그래? 그렇게 잘 알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악행을 더한다.
어떤 형태의 악이던 가리지 않는다.
되지도 않은 자기 충동만 충족시키려 한다. 그런데 그게 될까?
선은 참 어렵다.
인지부터 정확하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제는 분명 옳고 좋고 맞는 것 같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달리 보이고 그것으로 보니 최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악은 좋지 않은 것이 검증되어도 계속한다는 거다.
악은 자기 탐욕이고 폭력이다.
선은 균형을 맞춰 조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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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쩌다 인간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바른 먹거리, 편안한 집
이런 거  합시다.

공해 0인 삶은 괴롭지 않을 것.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Dollar supremacy is collapsing, as the backward US system is collapsing.

cheat in the name of economy

make lose balance,

make misfortune,

using of misfortune to suck blood

also for the whole world

so long time


no intention of changing


never stop to end of blood feeding or life span


What is more certain and not good is not because other countries are good at it.


This is what happened because earth people let them do as they pleases.


Things from other countries that do dirty hybrids with dollar based blood suckers.


===


Human civilization? It's just a hateful slave system.

능엄주 - 원문, 한글

출처 : https://m.blog.naver.com/bucherhansub/110185363205

<자료출처;cafe.daum.net/ebuddha의 [자료실]의 '능엄주' 게시판 >

능엄주

능엄신주는 《수능엄경(首楞嚴經)》에 나오는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를 말한다.
이 주문을 읽거나 외우거나 몸에 간직하면 처음
보리심을 낼 때부터 부처님 몸을 얻을 때까지
세세생생 나쁜 곳은 물론이고 천하거나 가난한 곳에도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계를 파한 사람은 계를 청정하게 하며,
계를 얻지 못한 이는 계를 얻게 하며,
정진하지 못한 이는 정진하게 하며,
지혜가 없는 이는 지혜를 얻게 하며,
재계를 가지지 못하는 이는 재계를 이루게 한다고 한다.

정성으로 이 주문을 외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온갖 재앙이 모두 소멸하게 된다고 한다 .   



 "능엄주해석" 뜻과 발음 (반자밀제 번역본)

사타타타가타 우슈니샤 시타타파트라 아파라지타 프라티앙기라 다라니
satatha tagata usnisa sitatapatra aparajita pratiangira dharani
如來頂髮白傘蓋無敵反呪詛陀羅尼(여래정발백산개무적반주저타라니)
(여래의 머리를 덮는 흰비단 덮개라 불리우는 무적의 저주를 막는 다라니)

나마스 타타수가타야 아르하트 삼먁삼붓다샤 사티야타 붓다 코티슈니삼
namas tatha sugataya arhat samyaksam buddhasya satyata  buddha kotisn isam
(지극하신 如來, 阿羅漢, 等正覺, 七俱 佛께 진실로 다같이 귀의합니다.)
(지극하신 여래, 아라한, 등정각, 칠구 불께 진실로 다같이 귀의합니다.)

나무 사트봐 붓디 봇디사타봐야
namu sattva buddhi boddhisattavaya
(佛菩薩에게 귀의합니다.)
(불보살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삽타남 삼먁 삼붓다 코티남 사 슈라봐카상가남
namu saptanam  samyak sambudda kotinam sasra vakasam ghanam
(七俱 等正覺과 聲聞僧伽에 귀의합니다.)
(칠구 등정각과 성문승가에 귀의합니다.)

나무 로케 아르하타남
namu loke arhata na m
(세상의 阿羅漢에게 귀의합니다.)
(세상의 아라한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스로타판나남
namu srota panna na m
(預流에게 귀의합니다.)
(예류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사크리다가미남
namu sakr da ga minam
(一來에게 귀의합니다.)
(일래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로케 삼먁가타남 삼먁프라티판나남
namu loke samyakgatanam samyakpratipannanam
(세상에서 不還으로 바르게 가는 자에게 귀의합니다.)
(세상에서 부환으로 바르게 가는 자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데봐리쉬남
namu devar s ina m
(神仙들에게 귀의합니다.)
(신선들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싯디 뷔디야 다라리쉬남 사파남 그라흐사마르타남
namu siddhi vidya dhararsinam  sapanam grahsamartanam
(呪力神通을 성취한 神仙과 모두를 이롭게 하는 呪에 귀의합니다.)
(주력신통을 성취한 신선과 모두를 이롭게 하는 주에 귀의합니다.)

나무 브라흐마네
namu Brahmane
(브라흐만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인드라야
namu Indraya
(인드라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루드라야 우마파티사히타야
namu Bhagavati Rudraya umapatisahitaya
(우마와 함께 계시는 성스러운 루드라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나라야나야 판챠마하삼무드라 나마스크리티야
namu Bhagavati Narayanaya pancamaha sammudra namaskrtya
(성스러운 나라야나의 五大무드라에 예배하고 귀의합니다. )
(성스러운 나라야나의 오대무드라에 예배하고 귀의합니다. )

나무 바가봐티 마하칼라야 트리푸라나가라 뷔드라봐나 카라야 아디묵티카 슈마샤나 니봐사네 마트리가남 나마스크리티야 namu Bhagavati mahakalaya tripuranagara vidravana karaya adhimuktika smasana nivasane matrganam namaskritya
(성스러운 마하칼라에게 귀의합니다. 트리푸라 都城을 불태우고, 아디묵티카神과 묘지에 사는 마트리가女神에게 예배합니다.)(성스러운 마하칼라에게 귀의합니다. 트리푸라 도성을 불태우고, 아디묵티카신과 묘지에 사는 마트리가여신에게 예배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타타가타쿨라야
namu Bhagavati tathagatakulaya
(성스러운 如來部에게 귀의합니다.)
(성스러운 여래부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파드마쿨라야
namu padmakulaya
(蓮華部에 귀의합니다.)
(연화부에 귀의합니다.)

나무 봐즈라쿨라야
namu vajrakulaya
(金剛部에 귀의합니다.)
(금강부에 귀의합니다.)

나무 마니쿨라야
namu manikulaya
(寶部에 귀의합니다.)
(보부에 귀의합니다.)

나무 가자쿨라야
namu gajakulaya
(象部에 귀의합니다.)
(상부에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드리다수라세나 프라하라나라자야 타타가타야
namu Bhagavati drdhasurasena praharanarajaya tatha gata ya
(용맹한 군사를 격파하는 王이신 성스러운 如來에게 귀의합니다.)
(용맹한 군사를 격파하는 왕이신 성스러운 여래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아미타바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티 삼먁삼붓다야
namu Bhagavati amitabhaya tatha gataya arhati samyaksambuddhaya
(正等覺을 이루신 성스러운 아미타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정등각을 이루신 성스러운 아미타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악쇼브야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티 삼먁삼붓다야
namu Bhagavati aksobhyaya tathagataya arhati samyaksambuddhaya
(정등각을 이루신 不動尊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정등각을 이루신 부동존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바이샤즈야구루봐이두리야 프라바라자야 타타가타야
namu Bhagavati  Bhaisajyaguruvaidurya prabharajaya tathagataya   
(성스러운 藥師琉璃光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성스러운 약사류리광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삼푸슈피타 샬렌드라라자 타타가타야 아르하티 삼먁삼붓다야
namu Bhagavati sampuspita salendra-raja tathagataya arhati samyaksam buddhaya
(정등각을 이루신 娑羅樹華普遍開敷王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정등각을 이루신 사라수화보편개부왕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사캬무니예 타타가타야 아르하티 삼먁삼붓다야
namu Bhagavatisa khyamuniye tatha gata ya arhatisam yaksambuddha ya
(정등각을 이루신 석가모니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정등각을 이루신 석가모니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나무 바가봐티 라트나케투라자 타타가타야 아르하티 삼먁삼붓다야
namu Bhagavati ratnaketuraja tathagataya arhatisam yaksam buddhaya
(정등각을 이루신 寶幢王如來佛에게 귀의합니다.)
(정등각을 이루신 보당왕여래불에게 귀의합니다.)

테브요 나마스크리티야 에타드 바가봐티 사타타가토슈니삼 시타타파트라 나무아파라지타 프라티앙기라
tebhyo namaskritya etad Bhagavati satatha gatosnisam sitatapatra namuapara jitapratiangira
(성스러운 여래들의 머리를 덮는 흰비단 덮개라 불리우는 무적의 저주를 막는 呪에 귀의하고 기원하나니,)
(성스러운 여래들의 머리를 덮는 흰비단 덮개라 불리우는 무적의 저주를 막는 주에 귀의하고 기원하나니,)

사르봐부타그라하 니그라하카라니
sarvabhu tagraha nigrahakarani
(일체의 마귀를 折伏 시켜주시고,)
(일체의 마귀를 절복 시켜주시고,)

파리뷔디야체다니 아칼라므루티유 파리트라야나카리 사르봐 반다나목샤니
parividyachedani  akalamrtyu paritrayanakari sarva bandhanamoks ani
(갑자기 죽게하는 주문으로부터 보호하고, 주문을 絶斷하며, 일체의 繫縛을 풀어주시고,)
(갑자기 죽게하는 주문으로부터 보호하고, 주문을 절단하며, 일체의 계박을 풀어주시고,)

사르봐두슈타 두슈타스봐프나 봐라니
sarvadusuta dusutasvapna varani
(모든 惡夢을 없애주시고,)
(모든 악몽을 없애주시고,)

차투라쉬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뷔드봠사나카리
Caturasitinam grahasahasranam vidhvam sanakari
(84,000의 邪魔를 파멸시켜 주소서!)
(84,000의 사마를 파멸시켜 주소서!)

아슈타뷤샤티남 낙샤트라남 프라사다나카리
asutavim satinam naks atranam prasa danakari
(28星宿들을 청정하게 바로잡아 주시고,)
(28성숙들을 청정하게 바로잡아 주시고,)

아슈타남 마하그라하남 뷔드봠사나카리 사르봐샤트루니봐라니
asutanam maha grahanam vidhvam sanakari sarvas atrunivarani
(8개의 大惡星을 파멸시켜, 일체의 敵을 막아주시며,)
(8개의 대악성을 파멸시켜, 일체의 적을 막아주시며,)

고라두슈타 스봐프나남 차나샤니
ghoradusta svapnanam canasani
(惡夢을 없애주시고,)
(악몽을 없애주시고,)

뷔샤샤스트라 아그니우다카웃타라니
visasastra agniudakauttarani
(毒, 劍, 火, 水로부터 구원하여 주소서!)
(독, 검, 화, 수로부터 구원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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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라지타 고라 마하발라찬다 마하디파타 마하테자
aparajita gora  mahabalacanda mahadhipata mahateja 
(不敗의 고라, 큰힘을 가진 찬다, 大火炎女尊, 大成德女尊,)
(불패의 고라, 큰힘을 가진 찬다, 대화염여존, 대성덕여존,)

마하슈붸타즈봘라 마하발라판다라봐시니
mahasvetajvala maha balapandaravasini
(太白炎光女尊, 大力白衣女尊,)
(태백염광여존, 대력백의여존,) 

아리야타라 브루쿠티
aryatara Bhrkuti
(성스러운 타라 蹙額女尊,)
(성스러운 타라 축액여존,)

차이봐뷔자야 봐즈라말라티
caivavijaya vajrama lati
(항상 승리하시는 봐즈라말라티,)

뷔슈루타 파드마카 봐즈라지흐봐차
visruta padmaka vajrajihvaca
( 蓮華坐로 유명한 金剛舌女尊,)
(연화좌로 유명한 금강설녀존,)

말라차이봐아파라지타 봐즈라단디
malacaivaaparajita vajradandi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신 불패의 金剛杖女尊,)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신 불패의 금강장여존,)

뷔샬라차 샨타뷔데하푸지타 수마야루파 마하슈붸타
visalaca santavidehapujita sumayarupa mahasveta
(위대하고 평화로운 靈이시며, 供養받으시는 뛰어난 呪術士의 모습을 하신 太白女尊,)
(위대하고 평화로운 영이시며, 공양받으시는 뛰어난 주술사의 모습을 하신 태백여존,)

아리야타라 마하발라 아마라 봐즈라삼칼라차이봐
aryatara mahabala amara vajrasam kalacaiva
(성스러운 타라이시며, 큰힘을 가진 不死의 金剛銷女尊,)
(성스러운 타라이시며, 큰힘을 가진 부사의 금강소녀존,)

봐즈라쿠마리 쿨라다리 봐즈라하스타차 뷔디야 칸차나 말리카
vajrakumari Kuladari vajrahasta ca vidya kancana malika
(金剛童女尊, 長女尊, 金剛手女尊, 明呪女尊, 金 女尊,)
(금강동녀존, 장녀존, 금강수여존, 명주여존, 금 여존,)

쿠숨바라트나
kusumbharatna
(황금의 보물을 가진 女尊,)
(황금의 보물을 가진 여존,)

봐이로차나크리야 야라투슈니샴
vairocanakriya yaratus nisam
(佛頂의 빛을 두루 비추어 淨化하는 女尊,)
(불정의 빛을 두루 비추어 정화하는 여존,)

뷔즈림바마나차
vijr mbhamanaca
(開口女尊,)
(개구여존,)

봐즈라 카나카 프라바 로차나 봐즈라툰디차
vajra kanaka prabha locana vajratundica
(번개와 황금의 빛이 나는 눈을 가진 女尊과 金剛嘴女尊,)
(번개와 황금의 빛이 나는 눈을 가진 여존과 금강취녀존,)

슈붸타 차 카말라 악샤샤쉬프라바
sveta ca kamala aksasasiprabha
(白蓮의 눈을 가진 月光女尊,)
(백련의 눈을 가진 월광여존,)

이티에테 무드라카나하 사르붸 락샴 쿠르봔투 이땀마마샤   
itiete mudrakanah sarve raksam kurvantu ittam mamasya
(위와 같이 무드라를 보이는 諸尊들께서는 저를 守護하여 주소서!)
(위와 같이 무드라를 보이는 제존들께서는 저를 수호하여 주소서!)

옴 리시가나 프라샤스타 사타타가토슈니샤
om  rsigana prasasta satatha gatosnisa
(옴 聖仙衆에 讚美되는 如來佛頂이여!)
(옴 성선중에 찬미되는 여래불정이여!)

훔 트룸 잠바나 
hum trum jambhana
(훔 트룸 破壞者여!)
(훔 트룸 파괴자여!)

훔 트룸 스탐바나
hum trum stambhana
(훔 트룸 制御者여!)
(훔 트룸 제어자여!)

훔 트룸 파라뷔디야삼바크샤나카라
hum trum paravidyasambhaksanakara
(훔 트룸 다른자들의 呪를 삼켜버리는 자여!)
(훔 트룸 다른자들의 주를 삼켜버리는 자여!)

훔 트룸 사르봐락샤락샤샤 그라하남 뷔드봠사나카라
hum trum sarvaraksaraks asyagrahanam vidhvamsanakara
(훔 트룸 一切의 夜叉, 羅刹, 惡魔들을 滅하는 자여!)
(훔 트룸 일체의 야차, 나찰, 악마들을 멸하는 자여!)

훔 트룸 차투라쉬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뷔드봠사나라
hum trum caturasitinam gra hasahasranam vidhvamsanara
(훔 트룸 84,000의 악마를 멸하는 자여!)
(훔 트룸 84,000의 악마를 멸하는 자여!)

훔 트룸 락샤 바가봔 마 타타가토슈니샤 프라티앙기라 마하사하스라 부자사하스라쉬르샤 코티 사하스라네트레 아뷔디야 즈봘리타 나타케 마하봐즈라다레 트리바봐나 만달레슈봐라
hum trumraksa Bhagavanma tathagatosnisa pratiangira maha sahasra Bhujasahasrasirsa kotisahasranetre avidya jvalita natakemaha vajradhare tribhavana mandalesvara
(훔 트룸 성스러운 大如來佛頂 反呪咀를 지키시며,거대한 천개의 손과 천개의 머리, 천개의 눈으로 無明을 비추시고,大金剛杵를 가지고 춤을 추시며 三界의 만달라를 지배하시는 自在神이여!)
(훔 트룸 성스러운 대여래불정 반주저를 지키시며,거대한 천개의 손과 천개의 머리, 천개의 눈으로 무명을 비추시고,대금강저를 가지고 춤을 추시며 삼계의 만달라를 지배하시는 자재신이여!)

옴 스봐스티르 바봐투 마마 이땀마마샤
om svastir bhavatu mama ittammamasya   
(옴 나는 승리하리라!)
(옴 나는 승리하리라!)

라자 바야트 차우라바야트 아그니바야트 우다카바야트
raja bhayat caurabhayat agnibhayat udakabhayat
(왕의 危難, 盜賊의 危難, 火難, 水難으로부터,)
(왕의 위난, 도적의 위난, 화난, 수난으로부터,)

뷔샤바야트 샤스트라 바야트 파라차크라바야트 두르빅샤 바야트
visabhayat sastra bhayat paracakrabhayat durbhiksa bhayat
(毒難, 武器의 危難, 敵兵의 危害, 飢饉難으로부터,)
(독난, 무기의 위난, 적병의 위해, 기근난으로부터,)

아샤니 바야트 아칼라므루티유바야트 다라니부미캄파 카파타바야트 울카파타바야트
asani bhayat akalamrtyubhayat dharani bhumikampa kapatabhayat ulkapa tabhayat
(雷靂의, 때아닌 죽음의, 지진에 떨어지는, 流星이 떨어지는 위난으로부터,)
(뇌력의, 때아닌 죽음의, 지진에 떨어지는, 유성이 떨어지는 위난으로부터,)

라자단다 나가바야트 뷔디유트바야트 수파르나 바야트
rajadanda nagabhayat vidyutbhayat suparna bhayat
(王의 형벌, 뱀의 위난, 雷電의 위난, 독수리의 위난으로부터,)
(왕의 형벌, 뱀의 위난, 뇌전의 위난, 독수리의 위난으로부터,)

약샤그라하트 락샤그라하트 프레타그라하트 피샤차그라하트
yaksagrahat raksagrahat pretagrahat pisacagrahat
(夜叉魔, 羅刹魔, 死靈魔, 屍肉鬼魔로부터,)
(야차마, 라찰마, 사령마, 시육귀마로부터,)

부타그라하트 쿰반다그라하트 푸타나그라하트 카타푸타나그라하트
bhutagrahat kumbhand agrahat putanagrahat kataputan agrahat
(精靈의 魔, 邪鬼魔, 小兒病魔, 죽게하는 小兒病魔로부터,)
(정령의 마, 사귀마, 소아병마, 죽게하는 소아병마로부터,)

스칸다그라하트 아파스마라그라하트 운마다그라하트 차야그라하트
skandagrahat apasma ragrahat unma dagrahat chaya grahat
(스칸다天魔, 顚狂病魔, 狂病魔, 惡魔로부터,)
(스칸다천마, 전광병마, 광병마, 악마로부터,)

레봐티그라하트 자타하리냐하 가르바하리냐하 루디라하리냐하
revati grahat jataha rinyah garbha harinyah rudhiraharinyah
(女魅의 魔, 生兒를 먹는 鬼女, 胎兒를 먹는 鬼女, 피를 먹는 鬼女로부터,)
(여매의 마, 생아를 먹는 귀녀, 태아를 먹는 귀녀, 피를 먹는 귀녀로부터,)

맘사하리냐하 메다하리냐하 마짜하리뇨 오조하리냐하
mamsaharinyah meda harinyah majjaharinyo ojoharinyah
(血食鬼女, 膏血을 먹는 鬼女, 骨髓를 먹는 鬼女, 吸精氣鬼女로부터,)
(혈식귀녀, 고혈을 먹는 귀녀, 골수를 먹는 귀녀, 흡정기귀녀로부터,)

지뷔타하리냐하 봐타하리냐하 봔타하리냐하 아슈챠하리냐하 치타하리냐하
jivitaharinyah vataharinyah vantaharinyah asucya harinyah cittaharinyah
(奪命食女鬼, 呼吸을 먹는 鬼女, 吐物을 먹는 鬼女, 不淨物을 먹는 鬼女, 心을 먹는 鬼女로부터,)
(탈명식녀귀, 호흡을 먹는 귀녀, 토물을 먹는 귀녀, 부정물을 먹는 귀녀, 심을 먹는 귀녀로부터,)

테샴사르봐샴 사르봐그라하남 뷔디얌체다야미 킬라야미
tesam sarvasam sarvagrahanam vidyam chedayami kilayami
(一切의 모든 惡魔들의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일체의 모든 악마들의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프라브라자카 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pravrajaka 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 mi
(行乞者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행걸자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다키니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dakini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다키니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다키니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마하파슈파티 루드라 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mahapasupati rudra 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大獸主 루드라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대수주 루드라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나라야나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narayana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나라야나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나라야나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타트봐가루다사하야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tattvagarud asahaya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진실한 가루다를 데리고 다니는 자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진실한 가루다를 데리고 다니는 자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마하칼라 마트리가나 크리얌 뷔디얌체다야미 킬라야미
maha kala matrgana kriyam vidyam chedayami kilayami
(마하칼라 聖母衆이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마하칼라 성모중이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카팔리카 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kapalika 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카팔리카派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카팔리카파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봐르타사다나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jayakaramadhukara sarva rthasa dhana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자야카라, 마두카라, 사르봐르타사다나 삼형제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자야카라, 마두카라, 사르봐르타사다나 삼형제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차투르바기니크리탐 뷔디얌체다야미 킬라야미
caturbhagini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四姉妹尊이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사자매존이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브링기리티 난다케슈봐라가나파티 사하야크리탐 뷔디얌체다얌 킬라야미
bhrngiriti nandakes varaganapati sahayakritam vidyam chedayam  kilayami
(브링기리티와 난다케슈봐라, 가나파티의 侍子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브링기리티와 난다케슈봐라, 가나파티의 시자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나그나슈라봐나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nagnasravan a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裸形行者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나형행자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아르하트크리탐 뷔디얌 체다야미 킬라야미
arhat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阿羅漢이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아라한이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뷔타라가크리탐 뷔디얌체다얌 킬라야미
vitaragakritam vidyam chedayam kilayami
(離欲者가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이욕자가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봐즈라파니 구흐야카구흐야카 아디파티크리탐 뷔디얌체다야미 킬라야미
vajrapani guhyakaguhyaka adhipatikritam vidyam chedayami kilayami
(金剛手 구흐야카와 구흐야카의 주인이 행한 呪文을 切斷하고 結縛하겠다.)
(금강수 구흐야카와 구흐야카의 주인이 행한 주문을 절단하고 결박하겠다.)

락샤맘 바가봔 이땀 마마샤
raksamam Bhagavan ittam mamasya   
(이와 같이 나를 수호하소서 聖스러운 이시여!)
(이와 같이 나를 수호하소서 성스러운 이시여!)

바가봔 시타타파트레 나무 아스투테 아시타날라루카 프라바스봐타 뷔카시타타 파트레
Bhagavan sitatapatre namu astute asitanala ruka prabha svata vikasitata pattre
(白光으로 빛나는 활짝핀 꽃처럼 성스러운 白傘蓋에 귀의하고 예배합니다.)
(백광으로 빛나는 활짝핀 꽃처럼 성스러운 백산개에 귀의하고 예배합니다.)

즈봘라 즈봘라 다라 다라 뷔다라 뷔다라 체다 체다 훔 훔 파트 파트 파트 파트 파트 스봐하
jvala jvala dara dara vidara vidara cheda cheda hum hum phat phat phat  phat phat svaha   
(光輝 光輝 粉碎 粉碎 破裂 破裂 切斷 切斷 훔 훔 파트 파트 파트 파트 파트 祈願합니다.)
(광휘 광휘 분쇄 분쇄 파열 파열 절단 절단 훔 훔 파트 파트 파트 파트 파트 기원합니다.)

헤헤 파트 아모가야 파트 아프라티하타야 파트 봐라프라다야 파트
hehe phat amoghaya phat apratihataya phat varapradaya phat 
(오직 오직 파트, 아모가야 파트, 無 者여 파트, 은혜를 베푸는 자여 파트,)
(오직 오직 파트, 아모가야 파트, 무 자여 파트, 은혜를 베푸는 자여 파트,)

아수라뷔드라봐카야 파트 사르봐데붸브야하 파트 사르봐나게브야하 파트 사르봐 약슈 브야하 파트
asuravidra vakaya phat sarvadevebhyah phat sarvana gebhyah phat sarva yaks bhyah phat 
(阿修羅를 물리치는 자여 파트, 一切의 天神이여 파트, 一切의 龍神이여 파트,一切의 夜叉여 파트,)
(아수라를 물리치는 자여 파트, 일체의 천신이여 파트, 일체의 용신이여 파트,일체의 야차여 파트,)

사르봐간다르붸브야하 파트 사르봐부테브야하 파트 카타푸타네브야하 파트 사르봐두르랑기에브야하 파트 sarvagandharvebhyah phat sarvabhutebhyah phat kataputanebhyah phat  sarvadurlanghiebhyah phat 
(一切의 乾 婆여 파트, 一切의 鬼靈이여 파트, 카타푸타나魔여 파트,一切의 이기기 어려운 것이여 파트,)
(일체의 건 파여 파트, 일체의 귀령이여 파트, 카타푸타나마여 파트,일체의 이기기 어려운 것이여 파트,)

사르봐 두슈프렉쉬테브야하 파트 사르봐즈봘레브야하 파트 사르봐파스마레브야하 파트 사르봐슈라봐네브야하 파트
sarva duspreksitebhyah phat sarvajvalebhyah phat sarvapasmarebhyah phat sarvasravanebhyah phat
(一切의 추악함이여 파트, 一切의 熱病이여 파트, 일체의 癲癎이여 파트, 一切의 聲聞이여 파트,)
(일체의 추악함이여 파트, 일체의 열병이여 파트, 일체의 전간이여 파트, 일체의 성문이여 파트,)

사르봐티르티케브야하 파트 사르봐운마데브야하 파트 사르봐 뷔디야다레브야하 파트 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봐르타사다케브야하 파트
sarvatirthikebhyah phat sarvaunmadebhyah phat sarvaVidyadharebhyah phat jayakaramadhukara sarvarthasa dhakebhyah phat
(一切의 外道여 파트, 一切의 狂亂者여 파트, 一切의 呪文을 가지는 자여 파트,勝利하는 자, 꿀을 만드는 자, 一切의 利益을 성취하는 자여 파트,)
(일체의 외도여 파트, 일체의 광란자여 파트, 일체의 주문을 가지는 자여 파트,승리하는 자, 꿀을 만드는 자, 일체의 이익을 성취하는 자여 파트,)

뷔디야차레브야하 파트 차투르바기니브야하 파트 봐즈라쿠마리 뷔디야라즈니브야하 파트 마하 프라티앙기라브야하 파트 vidyacarebhyah phat caturbhaginibhyah phat vajrakumari vidyarajnibhyah  phat maha pratiangirabhyah phat
(明行呪를 가진 者여 파트, 四姉妹尊이여 파트, 金剛蓋 明呪女王尊이여 파트,위대한 저주를 막는 여신들이여 파트,)
(명행주를 가진 자여 파트, 사자매존이여 파트, 금강개 명주여왕존이여 파트,위대한 저주를 막는 여신들이여 파트,)

봐즈라삼카리야 프라티앙기라자야 파트 마하칼라야 마하마트리가나 나마스크리타야 파트
vajrasamkarya pratiangirajaya phat mahakalaya mahamatrgana namaskritaya phat
(金剛連鎖反呪咀王이여 파트, 마하칼라, 마하마트리가나, 禮拜받는 자여 파트,)
(금강연쇄반주저왕이여 파트, 마하칼라, 마하마트리가나, 예배받는 자여 파트,)

뷔쉬나붸 파트 브라흐마네 파트 아그나예 파트 마하칼라야 파트
visnave phat Brahmane phat agnaye phat mah kalaya phat
(비슈누여 파트, 브라흐만이여 파트, 아그니여 파트, 마하칼라여 파트,)
(비슈누여 파트, 브라흐만이여 파트, 아그니여 파트, 마하칼라여 파트,)

칼라단다야 파트 마트레 파트 루드라야 파트 차문다야이 파트
kaladandaya phat matre phat Rudraya phat camundayai phat
(死神이여 파트, 聖母神이여 파트, 루드라여 파트, 차문다여 파트,)
(사신이여 파트, 성모신이여 파트, 루드라여 파트, 차문다여 파트,)

칼라라트리야이 파트 카팔리네 파트 아디묵티카 슈마샤나 봐시네 파트
kalaratryai phat kapaline phat adhimuktika smasana vasine phat
(破壞하는 밤의 神이여 파트, 해골을 가진이여 파트, 기쁘게 묘지에 사는이여 파트.)
(파괴하는 밤의 신이여 파트, 해골을 가진이여 파트, 기쁘게 묘지에 사는이여 파트.)

이예 카치트 사트봐스 마마 이땀 마마샤
Iye kacit sattvas mama ittham mamasya 
(이들과 어떠한 진실된 존재들도    를 수호하소서!)
(이들과 어떠한 진실된 존재들도    를 수호하소서!)

두슈치타하 아미트라치타하
duscittah amitracittah 
(惡心을 가진 자들, 敵意를 가진 자들,)
(악심을 가진 자들, 적의를 가진 자들,)

오자하라하 가르바라하 루디라하라하 봐사하라하
oja harah garbharah rudhiraharah  vasaharah
(精氣를 먹는 자들, 胎兒를 먹는 자들, 鮮血을 먹는 자들, 膏를 먹는 자들,)
(정기를 먹는 자들, 태아를 먹는 자들, 선혈을 먹는 자들, 고를 먹는 자들,)

맘사하라하 자타하라하 지뷔타하라하 발리야하라하
mamsaharah  jataharah  jivitaharah baliya harah
(肉을 먹는 자, 生兒를 먹는 자, 生命을 먹는 자, 供物을 먹는 자들,)
(육을 먹는 자, 생아를 먹는 자, 생명을 먹는 자, 공물을 먹는 자들,)

간다하라하 푸슈파하라하 파라하라하 사샤하라하
gandha harah puspa harah paraharah sasya harah 
(香을 먹는 자들, 꽃을 먹는 자들, 後果를 먹는 자들, 穀物을 먹는 자들,)
(향을 먹는 자들, 꽃을 먹는 자들, 후과를 먹는 자들, 곡물을 먹는 자들,)

파파치타하 두슈타치타하 루드라치타하
papacittah dustacittah  Rudracittah 
(罪惡心, 惡心, 暴惡心이 있는 자들,)
(죄악심, 악심, 폭악심이 있는 자들,)

약샤그라하하 락샤그라하하 프레타그라하하 피샤차그라하하
yaks agrahah raks agrahah pretagrahah  pisacagrahah
(夜叉魔들, 羅刹魔들, 死靈魔들, 鬼神魔들,)
(야차마들, 나찰마들, 사령마들, 귀신마들,)

부타그라하하 쿰반다그라하하 스칸다그라하하 운마다그라하하
bhutagrahah  kumbhandagrahah skandagrahah unmadagrahah
(精靈魔들, 甁과 같은 睾丸을 가진 惡鬼들, 스칸다天魔들, 狂亂魔들,)
(정령마들, 병과 같은 고환을 가진 악귀들, 스칸다천마들, 광란마들,)

차야그라하하 아파스마라그라하하 다카다키니그라하하 레봐티그라하하
chayagrahah apasma ragrahah  dakhadakinigrahah revatigrahah
(影鬼들, 癲癎病魔들, 다카와 다키니들, 레바티 女魔들,)
(영귀들, 전간병마들, 다카와 다키니들, 레바티 여마들,)

자미카그라하하 샤쿠니그라하하 마트리난다카그라하하 아람바카그라하하간타파니그라하하
jamikagrahah  sakunigrahah  matrnandakagrahah arambhakagrahah ghantapa nigrahah
(쟈미카 魔들, 샤쿠니 魔들, 母喜鬼魅들, 아람바카 鬼들, 간타파니 鬼들,)
(쟈미카 마들, 샤쿠니 마들, 모희귀매들, 아람바카 귀들, 간타파니 귀들,)

즈봐라에카니카 드뷔티야카 트리티야카 차투르타카 니티야즈봐라뷔스마라
jvaraeka hnika dvitiyaka tritiyaka caturtaka  nityajvaravismara
(一日의 熱, 二日째의 熱, 三日째의 熱, 四日째의 熱, 계속되는 意識不明의 熱,)
(일일의 열, 이일째의 열, 삼일째의 열, 사일째의 열, 계속되는 의식부명의 열,)

봐티카 파이티카 슐라이슈미카 삼니파티카
vatika  paittika slais mika  samnipatika
(風質에 의한 병, 膽汁質에 의한 병, 痰의 병, 體液의 不調로 인한 질병,)
(풍질에 의한 병, 담즙질에 의한 병, 담의 병, 체액의 불조로 인한 질병,)

사르봐즈봘라 시로루자 아르다봐베다카 악쉬로가하
sarvajvala siroruja  ardha vabhedaka  aksirogah
(一切의 熱病, 두통, 편두통, 眼疾,)
(일체의 열병, 두통, 편두통, 안질,)

무카로가하 칸타로가하 갈라로가하 카르나슐람
mukharogah  kan t harogah  galarogah  karn as u lam
(입병, 목병, 인후병, 귓병,)
(입병, 목병, 인후병, 귓병,)

단타슐람 흐리다야슐람 마르마슐람 파르슈봐슐람
dantas u lam hr dayas u lam marmas u lam pa rs vas u lam
(치통, 心痛, 관절통, 脅痛,)
(치통, 심통, 관절통, 협통,)

프리슈타슐람 우다라슐람 카티슐람 봐스티슐람
prsthasulam udarasulam katisulam vastisulam
(脊痛, 복통, 요통, 방광통,)
(척통, 복통, 요통, 방광통,)

우루슐람 장가슐람 하스타슐람 파다슐람 사르봐앙가프라티앙가슐람
urusulam janghasulam hastasulam padasulam sarvaangapratia gasulam
(大腿痛, 脚痛, 手痛, 足痛, 一切의 肢體痛,)
(대퇴통, 각통, 수통, 족통, 일체의 지체통,)

부타 붸탈라 다키니즈봘라
bhuta vetala dakinijvala 
(鬼神과 베탈라鬼, 다키니에 의한 熱痛,)
(귀신과 베탈라귀, 다키니에 의한 열통,)

다드루 간다 키티발루타 뷔사르팔로하 링가하 슈샤트라사나 카라 뷔사요가
dadru ganda kitibhaluta visarpaloha lin gah susatrasana kara visayoga
(瘡鼠瘡小痘疹 거미의 毒으로 인해 增加하는 赤斑과 강한 공포,)
(창서창소두진 거미의 독으로 인해 증가하는 적반과 강한 공포,)

아그니우다카
agniudaka
(火神과 水神,)
(화신과 수신,)

마라뷔라 칸다라 아칼라므루티유트리얌부카
maravira kandara akalamr tyutryambuka
(魔神英雄 칸다라, 不測의 죽음벌,)
(마신영웅 칸다라, 부측의 죽음벌,)

트라일라타 브리슈치카하 사르파나쿨라 심하브야그리약샤타레슈
trailata vrscikah sarpanakula simhavyaghri yaksataresu
(말등에(馬 ), 전갈, 사르파나쿨라, 사자, 호랑이, 夜叉등과)
(말등에(마 ), 전갈, 사르파나쿨라, 사자, 호랑이, 야차등과)

마라지봐스 테샴사르붸샴
marajivas tesam sarvesam
(一切의 惡神와 生物에 대하여)
(일체의 악신과 생물에 대하여)

시타타파트라 마하봐즈라우슈니샴 마하프라티앙기람
sita tapatra maha vajrausnisam maha pratiangiram
(白傘蓋 大金剛頂 大反呪詛로서)
(백산개 대금강정 대반주저로서)

야봐트드봐다샤요자나 아브얀타레나 뷔디야반담카로미
yavatdvadasayojana abhyantarena vidya bandham karomi
(내가 十二由旬동안 內面에서 呪文을 결박하겠노라!)
(내가 십이유순동안 내면에서 주문을 결박하겠노라!)

데샤반담카로미 파라뷔디야반담카로미
des a bandham karomi paravidyabandham karomi
(내가 있는 지역을 結界하고, 다른 이의 呪文을 결박하겠노라!)
(내가 있는 지역을 결계하고, 다른 이의 주문을 결박하겠노라!)

타디야타
tadyata
(그리하여 呪는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주는 다음과 같다.)

옴 아날레 뷔샤디 뷔라봐즈라다레 반다 반다네 봐즈라파네 파트 훔 트룸 파트 스봐하
om anale visadi vira vajradhare Bandha bandhane vajrapane phat hum trum  phat svaha
(옴 불이여! 빛나는 것이여! 용감한 金剛杵여! 呪縛! 呪縛이여! 金剛手여! 파트 훔 트룸 파트 스봐하)
(옴 불이여! 빛나는 것이여! 용감한 금강저여! 주박! 주박이여! 금강수여! 파트 훔 트룸 파트 스봐하)


견성 - 말 순서의 미美도 갖춰야 - 돈황본 육조단경 중에서

돈황본 육조단경 중에서 

17. 見性 - 견성

"모든 경서(經書) 및 문자와 소승(小乘)과 대승(大乘)과 십이부(十二部)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으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된다.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알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다.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이르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는다."


---

경이란 거 보면 말 순서를 지 꼴린대로 해서 듣는 이 짜증만 일으킨다.
다른 것들에는 불법(佛法)이 위대하다 오묘하다 심오하다는 것만 부잡이 잔뜩인데
이것에만 직설에 가까운 표현이 있다.

법문 자리 말이라 순서가 조금 뒤로 왔지만
요즘이라면 이것이 첫 순서가 아닐까?

- 내가 없다면 모든 게 없다.
- 모든 경서, 경전이 사람이 있고 있게 되었다.
- 모든 것이 자기 몸과 마음 가운데 있다.
- 깨면 부처요 안깨면 중생이다.

얼마나 쉽고 간단해.
대체 왜 그렇게 말을 알아듣기 어렵게 하는가? 장사여 사기여 가우여?
말은 들었는데 모르면 괜한 수고 아닌가? 소란 피우는 겨?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선가구감 (禪家龜鑑)

원문 http://seosan.buddhism.org/

출처 http://kr.buddhism.org/%ec%a1%b0%ec%82%ac%ec%96%b4%eb%a1%9d/?mod=document&uid=69&pageid=1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의 거룩한 글뿐이었다.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 가면서 외는 것이 사대부의 글이요, 빌어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그것은 울긋불긋한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보배로 생각하니, 아! 예와 지금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 다지도 다른가?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옛 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로써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 훗날의 도반들이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염려하여, 글 가운데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수백마디를 간추려서 한 장에 적나니, 가히 글은 간략하나 뜻은 두루 깊다할 만하다. 만일 이 말씀으로써 스승을 삼아 갈고 닦아 묘한이치를 얻으면 자자 구구에 석가 세존이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힘쓸지어다. 그렇더라도 글자를 여읜 한 글귀와 격 밖의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거니와,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 甲子(1564) 夏 虛堂 白華道人 序


1. 한 물건

여기에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 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2.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3. 불법의 방편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여러가지 근기가 있으니 여러가지 방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4. 굳이 이름하건데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니 부처니 중생이니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법체가 그러하니 한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나게된다

5. 삼처전심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禪是佛心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敎是佛語이다.

6. 마음에서 얻으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 버리면 꽃을 듦에 미소로써 답한 것拈花微笑도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밖에 따로 전한敎外別傳 선지가 될 것이다.

7. 한 마디 하노니

내가 한 마디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어 하는 일없이 망연히 앉아있으니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8. 한마음법과 견성법

교문에는 오직 한마음 법一心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하는 법見性法만을 전하였다.

9. 교와 선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여러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空한 이치를 말씀하셨지만,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10. 활과 활줄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無碍之法이란 바로 일미一味 에 돌아감인데, 이 한 맛의 흔적마저 떨어 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잣나무 이니라庭前柏樹子話'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龍藏所未有底 고한 것이다.

11. 먼저 참다운 가르침부터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치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自心之性相이고, 단박 깨치고 점차 닦는 두 가지 문頓悟漸修兩門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放下敎義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으리니, 그것이야말로 몸을 뛰어나는 살길이다.

12. 활구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고양이 쥐 잡듯

무릇 공안을 참구 함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짓되,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목마른 이가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참선의 세 가지 요건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大信根이고, 둘째는 큰 분심大憤志이며, 셋째는 큰 의심大疑情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개에게 불성이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狗子無佛性'라고 한 화두를 올 때도 들고 갈 때도 들고, 들어 올 때도 의심하고 나갈 때도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생각할 길도 끊어져, 아무 재미도맛도 없어지고, 마음꼬투리가 답답할 때, 그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16. 화두를 듦에 있어서의 병통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려고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서,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또 평소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 다니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무서워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識情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가라앉았다떴다 할뿐이다.

17. 조사관을 뚫어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이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 고르듯

공부는 마치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느슨한 정도가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惺惺하고 역력歷歷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密密綿綿 해야 한다.

19.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 팔만 사천의 마군이가 육근문六根門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마의 경계란?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요, 혹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타성일편打成一片

공부가 만약 때려 부수어 한 덩어리를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대저 참선하는 이는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더러운 몸四大醜身이 순간순간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 버리지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이든지 또렷또렷 매하지 않았는가 明明不昧?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결같은가?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부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내 몸을 이 생에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릴 것인가?'

23.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자들이다.

24. 칠통을 깨뜨려야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25. 눈 밝은 스승을 찾아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 해 보아야 決擇正眼 한다.

26. 다만 그대의 눈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기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只貴子眼正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不貴汝行履處,라고 하였다.

27.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먼저 마음을 깨달아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는 것뿐이지, 달리 성인의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30. 버리고 구함이 모두 더럽힘이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삿된 것이다.

31. 번뇌를 끊어야 열반이다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大涅槃이다.

32. 한 생각도 생겨남이 없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이 인연 따라 일어나지만 실상은 생겨남이 없음을 一念緣起無生믿어야 한다.

33. 일어나는 그 곳이 원래 비어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등이 모두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34.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다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것이라 또한 점점 닦아 갈 것도 없다.

35. 생사와 열반이 본래 없는 것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은 마치 허공에서 눈꽃이 기멸起滅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다시 열반을 따로 얻은 바가 없다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37. 버릇은 한번에 없어지지 않는다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 지 않는다.

38. 이것이 마도이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이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39. 마음계율을 깨뜨리지 말라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 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계를 지켜야

만약 계를 지킴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 한다는데, 하물며 청정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애욕을 끊어야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42. 걸림없는 지혜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禪定에서 나온다.

43. 선정에 들게 되면

마음이 정定에 들면 세간의 나고 꺼지는 모든 현상을 능히 알게 된다.

44.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않음不生이라 하고, 나지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解脫이라 한다.

45. 본래 그대로 열반이다

도를 닦아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修道證滅도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법이 본래 고요한 것心法本寂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그대로 열반이다常自寂滅相'라고 하신 것이다.

46. 보시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힘 닿는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同體大悲 이것이 참 보시布施니라.

47. 성내지 말라

누가 와서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 의 문이 열린다.

48. 인욕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만가지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하느니라.

49.마음을 지키는 일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진언을 외우는 것은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51. 예배

예배란 공경이요 조복받음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염불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요, 마음으로 하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도움도 없다.

53. 경을 듣는 일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친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 기뻐한 복도 있게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운 행은 헛되지 않는다.

54. 간경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55. 입만 배우지 말라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측간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

56. 외전

세속을 떠난 이가 세속 글을 익히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출가하는 뜻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 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 혜를 이으려 는 것이며, 삼계三界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58. 덧없는 불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다無常之火가 燒諸世間'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 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해야 한다.


59.명리를 버리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것이다.

60. 명리승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草衣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61. 가사입은 도둑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62. 한 덩이의 밥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찌 소화해 낼 수 있단 말인가!

63. 시주받은 과보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 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먹은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인가? 도대체 눈앞의 쾌락의 바로 후생이 괴로움인 줄을 생각지 않는구나.

64. 차라리 쇳물을 마시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 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 한 것이다.

65. 시주를 받을 때 화살받듯 하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66. 칼 가는 숫돌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서방이 와서 갈아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67.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음

그러므로 옛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三途苦이 괴로움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진짜 괴로움이다'라고 하였다.

68. 더러운 가죽주머니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덩어리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랴.

69. 참회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70. 하나의 바리때와 한 벌 옷

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 한 개의 표주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것이 없다.

71. 무심도인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보살과 마군

성문聲聞은 숲 속에 편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와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임종시에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五蘊이 다 빈 것이어서 네 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 것이 없고四大無我,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眞心無相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 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에 가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것이니 이것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고 임종 할 때에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주의하여야 한다.

74. 마지막 순간에 분별을 두지 말라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 거나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은 개미나 모기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학인의 병통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때때로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아무 것도 기억이 없는 빈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 모두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다.

76. 종사의 병통

종사宗師도 또한 병病이 많다. 병病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고, 병病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할' 喝하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병病이 손발에 있는 자는 나아 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으며, 병病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느 것이고 병病 아닌 것이 없다.

77. 장승의 노래

본분 종사本分宗師가 이 구句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紅爐點雪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石火電光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는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78. 마조의 일갈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 宗途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 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선종의 다섯 갈래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曺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仰宗, 법안종法眼宗 등이다.

80. 임제종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 六祖慧能大師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南嶽懷讓, 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 황벽희운黃檗希運, 임제의현臨濟義玄, 흥화존장興化存奬, 남원도옹南院道○, 풍혈연소風穴延沼,수산성념首山省念, 분양선소汾陽善昭, 자명초원慈明楚圓, 양기방회楊岐方會,백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五祖法演,원오극근圓悟克勤,경산종고선사俓山宗○禪師등이다.

81. 조동종

조동종曺洞宗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행사靑原行思, 석두희천石頭希遷, 약산유엄藥山惟儼, 운암당성雲巖曇晟, 동산양개洞山良价, 조산탐장曹山耽章, 운거도웅 雲居道膺선사 등이다.

82. 운문종

운문종雲門宗은 마조馬祖의 곁갈래로 천황도오天皇道悟, 용담숭신龍潭崇信, 덕산선감德山宣鑑, 설봉의존雪峰義存, 운문문언雲門文偃, 설두중현雪竇重顯, 천의의회天衣義懷선사 등이다.

83. 위앙종

위앙종은 백장百丈의 곁 갈래로 위산영우○山靈祐, 앙산혜적仰山慧寂, 향엄지한香嚴智閑, 남탑광용南塔光湧, 파초혜청芭蕉慧淸, 곽산경통○山景通, 무착문희無着文喜선사 등이다.

84. 법안종

법안종法眼宗은 설봉雪峰의 곁갈래로 현사사비玄沙師備, 지장계침地藏桂琛, 법안문익法眼文益, 천태덕소天台德韶, 영명연수永明延壽, 용제소수龍濟紹修, 남대수안南臺守安 선사 등이다.

85. 임제종의 가풍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지금을 삼현삼요三玄三要로써 판단하며, 용과 뱀을 주인과 손님의 위치로서 알아낸다. 금강이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갖은 위엄을 떨쳐 여우와 이리의 넋을 찢는다. 임제의 종지 를 알겠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물결 인다.

86. 조동종의 가풍

조동 가풍은 방편으로 다섯 자리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들고 나쁜 소견이 자라는 빽빽한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가지 모든 생각을 끊고 천착하여 가도다. 위음왕불威音王佛 나시기 전의 눈에 의젓한 풍광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풍경이다. 조동종을 알겠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대로, 바른 것, 치우친 것, 있다 없다 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威音王佛; 이 세계전에 맨 처음 부처가 되신 분이라 함

87. 운문종의 가풍

운문 가풍은 칼날 위에 길이 있고, 철벽에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흔들어 엎고 범부의 식견을 베어 버린다. 번개처럼 빠른 생각으로도 미칠 수 없는데,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발붙일 수 있으랴. 운문종을 알겠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 

88. 위앙종의 가풍

위앙 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가 씌어있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가 허리가 꺽인다. 네 가지 시비를 여의고, 백 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어 버려 한 망치로 쳐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홉 구비 굽은 구슬을 꿰뚫었도다. 위앙종을 알겠는가? 부러진 비석은 옛 길에 비켜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잔다.

89. 법안종의 가풍

법안 가풍은 말 속에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풀무질 한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 실상을 드러내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드러낸다. 법안종을 알겠는가? 바람은 구름을 몰아 산마루로 날리고, 밝은 달은 물과 함께 다리지나 흘러오네.

90.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에 사무쳐 들어가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었다.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어디나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짐을 져,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 치 못할 것이다.

91. 부처와 조사보기를 원수같이 한다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2. 거룩한 빛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보조국사 지눌스님 수심결 修心訣

원문출처 : http://kr.buddhism.org/%ec%a1%b0%ec%82%ac%ec%96%b4%eb%a1%9d/?mod=document&uid=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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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지눌스님 수심결 修心訣


1. 밖에서 찾지 말라

삼계(三界)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는 것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먼데서 찾으려고 하는가.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은 헛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항상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 모르고 있다. 법을 구하고자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만약 마음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밖에 법이 있다고 굳게 고집하여 불도를 구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티끌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항상 앉아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대장경을 줄줄 외고 온갖 고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아무 보람도 없이 수고롭기만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알면 수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여래의 지혜의 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하시고 '중생들의 갖가지 허망한 변화가 다 여래의 밝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셨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이 마음을 닦은 분들이며 미래에 배울 사람들도 또한 이 법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결코 밖에서 찾지 말라. 마음의 바탕은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니, 그릇된 인연만 떠나면 곧 당당한 부처다.

2. 불성은 어디에

[질문] 만약 불성(佛性)이 지금 이 몸에 있다고 한다면, 이미 몸 안에 있으면서도 범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어째서 나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해설하여 깨닫게 하소서.

[대답] 그대의 몸 안에 있는데도 그대 자신이 보지 못할 뿐이다. 그대가 배고프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성내고 기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또 이 육신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인연이 모여 된 것이므로 그 바탕이 둔해서 감정이 없는데, 어떻게 보고 듣고 깨닫고 알겠는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불성이다.

그러므로 임제(臨濟)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수·화·풍 사대(四大)는 법을 설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허공도 또한 그런데, 다만 그대 눈앞에 뚜렷이 홀로 밝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그것만이 비로소 법을 설하고 들을 줄을 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그대 본래의 마음이다. 불성이 지금 그대의 몸에 있는데 어찌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는가.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옛 성인들이 도에 들어간 두어 가지를 들어 의심을 풀어 줄 테니 잘 듣고 믿어라.

옛날에 이견왕(異見王)이 바라제존자께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견성(見性)한 이가 부처입니다."

"스님께서는 견성을 했습니까?"

"나는 견성을 했습니다."

"그 성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 무슨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지금 버젓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왕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내게 있단 말입니까?"

"왕이 작용한다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체(體)도 보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럼 작용할 때는 몇 군데로 나타납니까?"

"그것은 여덟 군데로 나타납니다."

왕이 그 여덟 군데를 말해 달라고 하자 존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태 안에 있으면 몸이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며, 눈에 있으면 보고, 귀에 있으면 듣고, 코에 있으면 냄새를 맡으며, 혀에 있으면 말하고, 손에 있으면 쥐고, 발에 있으면 걸어다닙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누리를 다 싸고, 거두어들이면 한 티끌에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것이 불성인 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정혼(精魂)이라 부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이 열리었다.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歸宗和尙)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화상은 말했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일러주고 싶지만 그대는 믿지 않을 것이다."

"큰스님의 지극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닦아가야(保林)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가려 있으면 허공의 꽃(空華)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단박 깨달았다.

옛 성인의 도에 들어간 인연은 이와 같이 명백하고 간단하다.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법문으로 말미암아 알아차린 바가 있다면, 그는 옛 성인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갈 것이다.

3. 신통변화

[질문] 앞에서 말씀하신 견성이 진정한 견성이라면 그는 바로 성인입니다. 그는 마땅히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수도인들은 어째서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부리지 못합니까?

[대답] 그대는 함부로 미친 소리를 하지 말라. 삿되고 바른 것을 가릴 줄 모르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곧잘 진리를 말하면서 마음은 게을러 빠져 도리어 분수 밖의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다 그대가 의심하는 데에 떨어진 것이다. 도를 배우면서 앞뒤를 알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면서 근본과 지말을 가리지 못하면, 그것은 삿된 소견이지 진실한 공부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자신만 그르칠 뿐만 아니라 남까지 그르치게 하는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대체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으니 요약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頓修)가 가장 으뜸가는 근기의 길이라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을 두고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 차츰 익혀 왔으므로, 금생에 이르러 일시에 단박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도 이것도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근기이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든 성인이 의지할 길이다.

예전부터 모든 성인들은 먼저 깨달은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해 증득했다. 그러니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서 차츰 익혀야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에 말씀하기를 '이치는 단박 깨닫는 것이므로 깨달음을 따라 번뇌를 녹일 수 있지만, 현상은 단번에 제거될 수 없으므로 차례를 따라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규봉(圭峰)스님도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뜻을 상세히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얼어붙은 못이 모두 물인 줄은 알지만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을 깨달았지만 법력으로써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흘러야 대고 씻을 수 있고, 망상이 다해야만 마음이 신령하게 통하여 신통 광명의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신통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익혀감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통이란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오히려 요망하고 괴이한 짓이며, 성인에게 있어서도 하찮은 일이다.

혹시 나타낼지라도 요긴하게 쓸 것이 못되는데, 요즘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령되이 말하기를 '한 생각 깨달을 때 한량없는 묘용(妙用)과 신통변화를 나타낸다'고 하니, 이와 같은 생각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근본과 지말을 알지 못한 탓이다. 앞과 뒤, 근본과 지말을 모르고 불도를 구한다면, 모가 난 나무를 가지고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방편을 모르기 때문에 절벽을 대하 듯 미리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나 부처의 씨앗을 말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깨달음도 믿지 않으며 신통이 없는 이를 보고 업신여긴다. 이는 성현을 속이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4. 돈오점수(頓悟漸修)

[질문]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이 모든 성인이 의지할 길이라고 말씀하였는데, 깨달음이 단박 깨달음(頓悟)라면 왜 차츰 닦을(漸修) 필요가 있으며, 닦음이 차츰 닦는 것이라면 어째서 닥박 깨달음이라 합니까? 돈오와 점수 두 가지 뜻을 거듭 말씁하여 의심을 풀어주소서.

[대답] 범부가 어리석어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성(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영지(靈知)가 참 부처인 줄 모른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바른 길에 들어 한 생각에 문득 마음의 빛을 돌이켜 자기 본성을 본다. 이 성품의 바탕에는 본래부터 번뇌 없는 지혜가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을 돈오라 한다.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기는 했지만, 끝없이 익혀온 버릇(濕氣)은 갑자기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의지해 닦고 차츰 익혀서 공이 이루어지고 성인의 모태(母胎)기르기를 오래하면 성(聖)을 이루게 되니, 이를 점수라 한다. 마치 어린애가 갓 태어났을 때 모든 감관이 갖추어 있음은 어른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동안의 세월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다.

[질문] 그러면 무슨 방편을 써야 한 생각에 문득 자성을 깨닫겠습니까?

[대답]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이다. 이 밖에 무슨 방편이 따로 있겠는가. 만약 방편을 써서 다시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해 눈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 눈인데 다시 볼 필요가 무엇인가. 없어지지 않은 줄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또 보려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겠는가. 자신의 영지(靈知)도 이와 같아서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약 애써 알려고 하면 곧 알 수 없으니 다만 아는 대상이 아닌 줄 알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자기의 영지(靈知)도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 마음인데 무엇하러 또 알려고 하는가. 만약 알려고 한다면 얻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니, 알지 못한 줄 알면 이것이 곧 견성(見成)이다.

5. 공적영지(空寂靈知)

[질문] 상상(上上)의 뛰어난 사람은 들으면 쉽게 알지만 중하(中下)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시 방편을 말씀하여 이들도 알아듣게 해 주소서.

[대답] 도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 그대가 어리석어 깨닫기를 기다리니 그 마음을 버리고 내 말을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므로 번뇌 망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 세상은 본래 공한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스러운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공적(空寂)하고 영지한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삼세의 부처님과 역대 조사아 천하의 선지식이 은밀히 서로 전한 법인(法印)이다. 이 마음만 깨달으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를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뛰어넘고 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리(自利) 이타(利他)를 갖추고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그대가 이와 같다면 진짜 대장부이니 평생에 할 일을 마친 것이다.

[질문] 제 분수에 따르면 어떤 것이 공적 영지의 마음입니까? [대답] 그대가 지금 내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의 마음인데, 어째서 돌이켜보지 않고 밖으로만 찾는가. 내 이제 그대에 분수에 따라 본심을 가리켜 깨닫게 할테니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잘 들어라.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도록 보고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고, 옳고 그른 온갖 행위를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만약 이 육신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이 일단 죽게 되면 몸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귀는 들을 수 없고,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혀는 말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며,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를 못하는가.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그대의 본심이지 육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육신을 이루고 있는 사대(四大)는 그 성질이 공하여 마치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고 물에 비친 달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분명히 알며 어둡지 않고 한량없는 묘용(妙用)을 느끼는 대로 통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통과 묘용이여, 물을 긷고 나무를 나름이로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이치에 들어가는 데는 길이 많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리켜 근원에 들어가게 하리라.

"그대는 지금 까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 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이것이 관음보살께서 진리에 드신 문이다.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말하기를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얻을 수 없다면 그 때는 허공이 아니겠는가?"

"본래 공하지 않으므로 환히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실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생명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어디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으므로 피차(彼此)가 없다. 피차가 없으므로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으므로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으므로 옛날과 지금이 없으며, 옛날과 지금이 없으므로 어리석음과 깨달음도 없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니 모든 감관과 대상과 망념,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양 과 온갖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공적하고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靈知)가 어둡지 않아 무정(無情)한 것과 같지 않고 성품이 스스로 신기롭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하는 청정한 마음의 실체이다.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다. 이 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한결 같은(一如)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며,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자는 육도(六道)에 나아가 한량없이 헤맬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한 마음이 어리석어 육도로 나아가는 자는 가는 사람이고 움직이는 사람이며, 법계(法界)를 깨달아 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이는 오는 사람이고 고요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다. 그래서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이라고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고 해서 덜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지혜에 있어서도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있어도 어둡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성인이라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 해서 덜하지도 않는다면, 부처님과 조사가 보통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보통사람과 다른 점은 스스로 그 마음을 살피는데 있다. 그대가 이 말을 믿고 의문이 단박 풀리며 대장부의 뜻을 내어 진정한 견해를 일으켜서 몸소 그 맛을 보고 스스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 닦는 사람의 알아 깨닫는 곳이고, 따로 계급과 차례가 없기 때문에 돈(頓)이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의 인(因) 중에서 부처의 과덕(果德)에 계합하여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고 한 말과 같다.

6. 소먹이는 행

[질문] 이 이치를 깨달으면 다시 계급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깨달은 뒤에 다시 닦으면서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룰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답]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이유는 앞에서 이미 누누이 설명하였는데 아직도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 거듭 설명하겠다.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들어라. 범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도를 유전하면서 나고 죽음에 '나'라는 관념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과 뒤바뀜과 무명의 종자와 익힌 버릇이 오랫동안 한데 어울려 그 성품을 이루었다. 금생에 이르러 자성이 본래 공적하여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문득 깨닫더라도, 그 오랜 버릇을 갑자기 끊어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역경과 순경을 당하면 성내고 기뻐하며, 옳고 그르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고, 바깥 대상에 대한 번뇌가 이전과 다름이 없다. 만약 지혜로써 공부를 더하고 힘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크게 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에 익힌 버릇이 깊어서, 바람은 멎었지만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드러났지만 망상이 그대로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종고선사도 말씀하기를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깨치고는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헤매면서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한번 깨쳤다 하여 뒤에 닦는 일을 버려 두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깨친 뒤에도 늘 비추고 살피어 망상이 문득 일어날지라도 아예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구경(究竟)이 된다. 천하 선지식이 깨친 뒤에 소 먹이는 행(牧牛行)을 닦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 하지만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이미 깨달았으므로, 악을 끊으려 해도 끊을 것이 없고 선을 닦으려 해도 닦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온갖 행(萬行)을 두루 닦더라도 오로지 무념(無念)으로 근본을 삼으라' 하였고 규봉(圭峰) 스님께서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통틀어 이렇게 결론지었다. '

이 성품에는 원래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지혜가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고 여기에 의지해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勝禪)이라 하고, 또 여래의 청정한 선이라 한다. 만약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저절로 차츰 백천삼매(百千三昧) 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전해 오는 것이 바로 이 선이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하나만 없어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선악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꼿꼿이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억제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는 것으로서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미혹(迷惑)이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성문(聲聞)들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둑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등이 성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피면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어서 그 자리가 곧 고요함(寂)이니 어찌 다시 끊을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깨달음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고 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생각이 일어나거든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외부의 번뇌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제호(醍 -우유를 정제하여 만든 음식. 불성에 비유한 말)가 될 것이다. 미혹이란 그 근본이 없음을 살피면 허공의 꽃인 삼계(三界)는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허깨비인 육진(六塵)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서 살피고 돌아보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면, 사랑과 미움이 저절로 사라지고 자비와 지혜가 밝아질 것이다. 죄업은 자연히 소멸되고 공덕이 늘어나 번뇌가 다할 때 생사도 곧 끊어질 것이다. 미세한 번뇌의 흐름조차 아주 끊어지고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뚜렷이 홀로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해 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달이 허공에 떠오르면 그 그림자가 물 위에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 있는 중생을 건지면서 근심없이 즐거울 것이다. 이를 가리켜 크게 깨달은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7.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으라

[질문] 깨달은 뒤에 닦는 법문 가운데 선정(定)과 지혜(慧)를 고루 가진다는 이치를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자세히 설명하여 의혹을 풀고 해탈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대답] 법과 이치를 말한다면, 이치에 들어가는 천 가지 문이 선정과 지혜 아님이 없다. 그 요점을 들면 자성의 본체와 작용 두 가지 뜻인데, 앞에서 말한 공적 영지가 바로 그것이다. 선정은 본체고 지혜는 작용이다. 본체의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의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는다. 선정이 곧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므로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 자성(自性)의 선정이고,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성의 지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런 도리를 깨달아 고요함(寂)과 앎(知)에 자재하여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게 되면, 돈문(頓門)에 들어간 이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이 된다.

그러나 먼저 적적(寂寂)으로써 흩어지려는 생각을 다스리고 그 다음 성성으로써 흐리멍텅함을 다스린다 하여, 앞과 뒤에 대치하여 혼침(昏)과 산란(亂)을 고루 다스려 고요함에 들어가는 이는 점문(漸門)에 속하는 낮은 근기의 소행이다. 그는 성성과 적적을 고루 가진다고 하지만, 적적만을 취한 수행이 될 뿐이다. 어찌 할일을 마친 사람의 본래 고요함(本寂)과 본래 앎(本知)을 떠나지 않고 자유자재로 겸해 닦는 것이 되겠는가.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는 '스스로 깨달아 수행하는 것은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앞 뒤를 따진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뜻은, 힘씀과 작용(功用)에 떨어지지 않고 원래 저절로 무위(無爲)여서 따로 특별한 때가 없는 것이다. 빛을 보고 소리를 들을 때도 그러하고, 옷 입고 밥 먹을 때도 그러하며, 대소변을 볼 때도 그러하고, 남과 만나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다.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잠잠하거나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항상 그러하여, 마치 빈배가 물결을 타고 높았다 낮았다 하고, 흐르는 물이 산기슭을 돌 때 굽었다 곧았다 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마다 분별이 없다. 오늘도 유유자적(悠悠自適) 내일도 유유자적하면서, 온갖 인연을 따라도 아무 장애가 없고 악을 끊거나 선을 닦지도 않으며, 순진하고 거짓이 없어 보고 들음이 예사로워 한 티끌도 맞서는 것이 없다. 번뇌를 떨어버리려는 노력도 필요 없고, 한 생각도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얽힌 인연을 잊으려는 힘을 빌릴 것도 없다. 그러나 업장은 두텁고 익힌 버릇은 무거우며, 관행(觀行)은 약하고 마음은 들뜨며, 무명의 힘은 세고 지혜의 힘은 약해서, 선악의 경계에서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담담하지 못한 이는 얽힌 인연을 잊고 번뇌를 떨어버리는 공부가 있어야 한다.

옛 사람은 이와 같이 말씀하였다.

'여섯 감관(六根)이 대상을 거두어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定)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이 함께 공함을 비추어보아 미혹이 없는 것을 지혜(慧)라 한다.'

이것이 상(相)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행할 바이지만 대치하는 문에서는 어쩔 수 없다. 만약 들뜸이 심하면 먼저 선정의 문으로써 산란을 거두어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고요함에 계합하도록 하며, 혼침(昏沈)이 많으면 지혜의 문으로써 공(空)을 관하여 비추어보아 미혹을 없애고 본래의 앎에 계합하도록 한다.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무기(無記, 선도 악도 아닌 것)를 다스려, 움직이고 고요한 자취가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부를 마치면, 어떤 대상을 대하더라도 생각마다 근본으로 돌아간다. 인연을 만나도 마음마다 도에 계합하여 걸림 없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비로소 일없는 사람(無事人)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불성을 분명하게 본 이라 할 것이다.

8. 깨치기 전은 참 수행이 아니다.

[질문] 스님의 판단에 따르면, 깨달은 뒤 닦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는 뜻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성(自性)의 선정과 지혜이고, 둘째는 상(相)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입니다. 자성의 문에서는 '걸림 없는 고요와 앎이 원래 무위(無爲)여서 한 티끌도 상대될 것이 없으므로 번뇌를 떨어버리려는 수고가 없고, 한 생각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얽힌 인연을 잊으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하고 판단하기를 '그것은 돈문(頓門)에 들어간 이가 자성을 떠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따른 문에서는 '이치에 맞추어 산란을 거두고 법을 선택하고 공을 관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 무위에 들어간다'하고 판단하기를 '이것은 점문(漸門)의 낮은 근기가 행할 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문의 선정과 지혜에 대하여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수행할 경우, 먼저 자성의 문에 의해 선정과 지혜를 겸수한 후에 다시 상을 따르는 문의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지, 아니면 먼저 상을 따르는 문에 의해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린 다음에 자성의 문에 들어가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자성의 선정과 지혜에 의지한다면, 걸림 없이 고요하고 알기 때문에 다시 더 다스릴 공부가 없는데 무엇 하러 또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흰 옥에 문채를 새겨 덕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먼저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로 다스리는 공부를 이룬 다음에 자성의 문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분명히 점문의 낮은 근기가 깨치기 전에 점차로 익히는 것이니, 어찌 돈문자가 먼저 깨치고 나서 닦는 데에 노력이 없는 노력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동시여서 전후가 없다면 두 문의 선정과 지혜가 돈. 점이 다른데 어떻게 한꺼번에 같이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돈문자는 자성의 문에 의지해 걸림 없이 더 공부할 필요도 없고, 점문의 낮은 근기는 상을 따르는 문으로 나아가 다스리는 공부에 힘쓸 것입니다. 두 문의 근기가 돈점이 다르고 우열이 분명한데, 먼저 깨치고 나서 닦는 문 가운데서 어떻게 두 가지를 함께 해석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하여 의문을 풀어 주소서.

[대답] 내 해석은 분명한데 그대가 스스로 의문을 갖는구나. 말을 따라 알려고 하면 의혹이 더욱 생기고, 뜻을 얻어 말을 잊으면 따질 필요가 없다. 그 두 문에 대해 각기 수행할 것을 판단한다면, 자성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돈문에서 노력함이 없는 노력으로 두 가지 고요함을 함께 활용하고 자성을 스스로 닦아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사람이다.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깨치기 전 점문의 낮은 근기가 다스리는 공부이고, 마음마다 의혹을 끊고 고요함을 취하는 수행자이다. 이 두 문의 수행은 돈과 점이 각기 다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깨친 다음에 닦는 문에서 겸하여 상을 따르는 문의 대치를 말한 것은, 전혀 점문의 근기가 행할 바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길을 빌리고 숙박을 의탁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 돈문에도 근기가 뛰어난 이가 있고 낮은 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예로써 그 가는 길을 똑같이 판단할 수는 없다. 번뇌가 사라지고 심신이 홀가분해서, 선에서도 선을 떠나고 악에서도 악을 떠나 여덟 가지 바람(八風)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 가지 느낌(三受, 괴로움.즐거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자성의 선정과 지혜에 의해 걸림 없이 겸해 닦으며 천진하여 조작이 없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항상 선(禪)이므로 자연의 이치를 성취할 것이니, 어찌 상을 따르는 문의 방법을 빌리겠는가.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할 필요도 없다.

먼저 단박 깨쳤다 할지라도 번뇌가 심히 진하고 익힌 버릇이 굳고 무거워 대상과 마주칠 때마다 생각 생각 감정을 일으키고, 인연을 만나면 마음마다 대상을 만든다. 혼침과 산란에 부추김을 당해 고요함과 앎이 한결같지 않은 어두운 이는,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빌어 대치하기를 잊지 않고,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 무위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대치하는 공부에 의해 잠시 익힌 버릇을 억제하더라도 심성이 본래 청정하고 번뇌가 본래 공한 것임을 먼저 깨달았으므로, 점문의 낮은 근기의 오염된 수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깨치기 전의 수행은 비록 공부를 잊지 않아 생각 생각 익히고 닦더라도 곳곳에 의문을 일으켜 거리끼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 속에 걸린 것 같아서 불안한 자취가 항상 앞에 나타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대치하는 공부가 성숙하게 되면 심신이 홀가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홀가분해질지라도 의혹의 뿌리를 끊지 못한 것이 돌로 풀을 누른 것 같아서 생사의 경계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닫기 전의 수행은 진정한 수행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깨친 사람의 경지로는 비록 대치하는 방편이 있더라도 생각마다 의혹이 없어 더럽히거나 물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 저절로 천진한 묘성(妙性)에 계합하여 걸림 없이 고요하고 분명해서, 생각마다 온갖 대상에 관계하면서도 마음마다 모든 번뇌를 아주 끊되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고, 앞에서 이야기한 근기가 뛰어난 사람과 아무런 차별도 없다.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가 비록 점기(漸機)의 행할 바이지만,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 본다면 쇠로써 금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도리를 안다면 어찌 두 문의 선정과 지혜에 앞뒤의 순서가 있다고 두 가지로 보는 의문이 있겠는가. 바라건대 수도인은 이 일을 잘 되새겨 다시는 더 의혹을 일으켜 스스로 물러서지 않도록 하라. 대장부의 뜻을 갖추어 위없는 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버리고 다시 또 어떻게 하겠는가. 부디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바로 참뜻을 알아 낱낱이 자신에게 돌리어 근본에 계합하면, 스승 없는 지혜가 저절로 드러나고 천진한 이치가 어둡지 않고 분명해서,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것에 의해 깨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오묘한 뜻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기는 하지만, 일찍이 지혜의 씨를 뿌린 대승 근기가 아니면 한 생각에 바른 믿음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비방하면서 무간지옥의 업을 짓는 이가 많다. 그러나 믿고 받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한번 귀를 스쳐 잠시 인연을 맺어 놓으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유심결(唯心訣)』에 이르기를 '듣기만 하고 믿지 않더라도 부처될 종자의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인간과 천상의 복보다 뛰어나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성불할 바른 인연을 잃지 않는데 하물며 들어서 믿고 배우며 이루어서 지키고 잊어버리지 않는 이의 공덕이야 어찌 능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9. 이 몸 이 때 못 건지면 지난 세월 윤회의 업을 돌이켜보면 몇천 겁을 두고 흑암지옥에 떨어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 갖가지 고통을 받았을 것인가.

불도를 구하고자 하여도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오랜 겁을 생사에 빠져 깨닫지 못한 채 갖은 악업을 지은 것이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때때로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데, 어찌 방종하여 그전 같은 재앙을 다시 받겠는가. 그리고 누가 나에게 지금의 인생을 만나 만물의 영장이 되어 도 닦는 길을 잃지 않게 하였는고. 실로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남이고, 겨자씨가 바늘 끝에 꽂힌 격이다. 그 다행함을 어찌 말로써 다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스스로 물러설 마음을 내거나 게으름을 부려 항상 뒤로 미루다가 잠깐 사이에 목숨을 잃고 지옥에라도 떨어져 갖은 고통을 받을 때, 한마디 불법을 들어 믿고 받들어 괴로움을 벗고자 한들 어찌 될수 있겠는가. 막상 위태로운 데에 이르러서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

바라건대 수도인들은 게으르지 말고 탐욕과 음욕에 집착하지 말며, 머리에 불을 끄듯 하여 돌이켜 살필 줄을 알아야 한다. 무상(無常)은 신속해서 몸은 아침 이슬과 같고 목숨은 저녁 노을과 같다. 오늘은 살아 있을지라도 내일은 기약하기 어려우니 간절히 마음에 새겨 둘 일이다. 세상의 유위(有爲)의 선을 가지고도 삼악도의 괴로운 윤회를 면하고 천상과 인간에서 뛰어난 과보를 얻어 여러가지 즐거움을 누리는데, 하물며 이 최상승(最上勝)의 심오한 법문이겠는가. 잠시 믿기만 해도 그 공덕은 어떤 비유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전에 말씀하기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사는 중생들에게 칠보로 공양하여 모두 만족하게 하고, 또 그 세계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사과(四果, 성자의 네 가지 지위)를 얻게 하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다. 그러나 잠깐동안 이 법을 바르게 생각하여 얻는 공덕보다는 못하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법문은 가장 존귀하여 어떤 공덕으로도 견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경전에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이 바로 도량(道場)이니, 간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뛰어나다. 보배로 된 탑은 언젠가 무너져 티끌이 되겠지만,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였다.

원컨대 수도인은 이 말을 깊이 음미하여 간절히 마음에 새겨 두라. 이 몸을 금생에 건지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건질 것인가. 지금 닦지 않으면 만겁(萬劫)에 어긋날 것이고, 힘써 닦으면 어려운 수행도 점점 어렵지 않게 되어 공부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배가 고파 음식을 대하고도 먹을 줄 모르고, 병들어 의사를 만나고서도 약을 먹을 줄 모르니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나. 또 세상 일은 그 모양도 볼 수 있고 그 공도 징험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한 가지 일만 얻더라도 희귀하다고 찬탄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 마음 법문은 그 모양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天魔)와 외도(外道)가 비방할래야 문이 없고, 제석·범천 등 모든 천신이 칭찬할래야 미칠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식견이 옅은 범부들이야 어찌 흉내인들 낼 수 있겠는가. 우물 안 개구리가 어떻게 바다의 넓음을 알며, 여우가 어떻게 사자처럼 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법 세상에서 이 법문을 듣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믿고 받아 가지는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세월에 모든 성인을 섬기어 온갖 선근(善根)을 심었고, 지혜의 바른 인연을 깊게 맺은 최상의 근기임을 알 수 있다.

『금강경』에 말씀하기를 '이 글귀에 신심을 내는 이는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온갖 선근을 심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대승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해 말한다'고도 하였다. 바라건대 도를 구하는 사람은 미리 겁을 먹지 말고 용맹심을 내야 할 것이니, 지난 세월에 얼마나 착한 인연을 쌓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뛰어난 이 법문을 믿지 않고 열등을 자처하여 어렵다는 생각으로 지금 닦지 않는다면 비록 지난 세상의 선근이 있다 할지라도 이제 그것을 끊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대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미 보배가 쌓인 곳에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돌이키기 어려우니 바라건대 마땅히 삼가하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보배가 있는 곳을 알면서도 구하지 않다가 어찌 오래도록 외롭고 가난함을 원망할 것인가. 보배를 얻고자 한다면 그 가죽 주머니를 놓아 버려라.

2023년 6월 12일 월요일

중도中道 - 불교는 관점觀點놀이라는 자백

中道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
유(有)ㆍ공(空)의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진실(眞實)의 도리(道理).
고락(苦樂)의 양편을 떠난 올바른 행법(行法).

中庸 - 치우침이나 과부족(過不足)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狀態)나 정도(程度)

道자, 庸(用, 體와用)자 붙었다고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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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단하다는 대학 나와서 몇 십년 연구하여 불려 다니면서 강의했다는 걸 들어보면

불교는 관점놀이고 관점 잘 바꾸어서 요리조리 하는 게  진짜로 묘용이라고 한다.

희론戱論이다.

같은 것을 진실하게 이야기 했더라도 소위 말로 떠드는 강의식은 형식이 틀린거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관념놀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중도中道를 설명할 때, 중간쟁이는 아니라고 하니까... 
극단, 변이 없다고 하여 견해를 낸다.
양극단을 배제하니까 중도라고 말을 한다. 그러니까 자꾸 말장난이라고 .. 맞아야 한다.
양극단을 배제한다면 튀어나온 모난 거만 배제하면 중도냔 말이냐에 대해 답해야 한다.
단순 선형적이라면 끝없이 양극단이 되서 배제하다 끝내 없어질 것이고
입체적 다극단이라면 헤메다 끝날 것 같은데...어쨌든 배제하다 보면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어떤 상황의 것이건 모두 없애야 한다는 배꼽 큰 데 가 있게 된다.

이런 변이라면 쉽게 설명이 가능한데 중中은 리離다.
예를 들어, 주,객하면 주,객 하는 그것 유무하면 유무 하는 그것이 중이다.
그래서 주,객을 떠났다하고 유무를 떠났다 하는데
유,무 주,객 하는 그것은 유,무 주,객이 아니다.
또 유,무 주,객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도 한결같다.
식별이 대별이 일어날 때, 식별 대별은 아니지만 식별,대별하는 것.

그래서 자꾸 뭐뭐뭐 하는 그놈이라 말하는 것이다.

다시 극단, 변이 없다. - 전혀 다르지 않나?

이것이 모든 일어나는 일을 관통하고 있다.
중도는 중심.핵심 꿰뚫는다 관통 되어 있다는 말이다.
딱 거기라는 말이다. 딱 이거. 이런 뜻이 중도다.
중심 근처에 가도 딱 중심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변화만 보면 중심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관통되어 있지 않다면 벗어나기 쉽다.
완전하다. 조금만 엇나가도 바로 감지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기하적 시각적 중간을 떠나지 못하니까 이 중이 잡히지 않는다.
기하적 시각적인 것은 관념으로만 있을 뿐 없다.
직관되는 실제 모양은 모두 다 모든 곳 모든 때 여서 없어 보이고, 관념적.개념적으로는 없다.
그래서 그 상태를 체크해 보니 어느 모로도 치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균형이 유지되고 안정된 조화를 찾을 수 있으니까...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그냥 부처가 가리키는

해탈.열반을 바로 찍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식識 어떤 관점이고 그것이 심경에 집集해서 파하는데
온과 식, 식에서도 전5식, 6식 7식 8식은 어떻게 다르고
8식 또는 9식과 열반과는 어떻게 다른지.
상수멸진이라는데 그것은 식인지 아닌지.
해탈(벗어나)하여 열반에 이른다는데 무엇을 해탈하여 어떤 상태에 이른 것인지.
이런 것도 없이 탈해탈이니 해해탈을 이야기하면
개념 단어 많이 아는 지식자랑인가?
일단 해탈을 시켜 놓고 이런 하던가...

강단이건 법석이건 올라서도 이런 가르침을 할 때는
중언부언(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주절거리는) 할 것이 아니다.
많거나 깊은 연구성과를  들이댈 때도 가는 핵심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존의 틀린 것을 지적할 때도 핵심에 부합되지 않음의 예로서 들어야 한다.

점검은 또 다른 영역이다. 좋은 점검은 핵심을 떠나지 않는다.
꼭 보태 준 것도 없는 것들이 자빠뜨리기 좋아하고 희론하기 좋아하지...
두들겨 패고 시끄럽게 꽥꽥대고...그 짓 못해 환장하고 그럴라고 태어난 놈들처럼...
무엇이 인간세를 험악하게 하나? 그거부터 깨쳐라...

수행은 힘을 나게 하고 실상을 드러나게 한다.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전제를 흔드는 불교 논리의 문제...

기독.천주교 같은 경우는 논리가 없으므로 검증.동의.설득 이런 게 없다.
밑도 끝도 없고 폭력이며 복종을 목표로 한다. 나에겐 그렇다.
근거도 개인적 체험 위주며 그것에만 권위를 부여하여 전개 된다.
다른 것들을 저주와 힘으로 굴복시키는 걸 영광이라고 하는 것 같고,
결국 '내 배경이 센 놈'이란 완장을 흔드는 것 같다.
천국을 떠들지 말고 그 좋다는 천국 당장 가길 진심으로 기도 한다.

불교는 8만4천 방편문이라고 붙여서 온갖 것들을 다 전개 한다.
(신의에 가까운 의사 처방전보다 많은 것 같다)

초기에 대해 공부 잘하는 분들이 정리 해 전달하는데
가만 듣고 있으면 논리적인 것 같지만, 확 깨는 지점이 있다.
유가무가처럼 성립불가로 끝나거나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이 해탈.열반이 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불교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그것만 이야기하면 된다.
관점을 달리한다면 그 달리하는 것부터 바로 밝히라.
같은 말 빙빙 돌려서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하지 말고)

그럼 나 같은 놈에게는 질문이 일어 난다.
해탈.열반이 진리라면 진리가 문제야 번뇌가 문제야.
이 번뇌가 문제다. 풀어야 할 것도 번뇌다. 이게 인간 몸으로 태어나 그렇다는 거 잘 알지.
(사람들의 번뇌가 뭔가 - 숨쉬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이다.)


모든 번뇌의 원인은 태어남이고 해탈.열반은 연기 없이 있다니 하는 말이다.
죽어도 해탈 못하고 업에 따라 떠돌면서 고통 받을 거야... 이것이 불교식 협박이다.

그런데 태어나서 몸이 이렇게 있는데 어쩌자는 거냐...
배고파서 먹으면 안되는 건가? 그럼 너부터 굶으라.
졸려서 자면 안되는 건가? 그럼 너부터 자지마.
마려워서 싸면 안되는 건가? 그럼 너부터 싸지마.
숨 좀 쉬면 안되는 건가? 그럼 너부터 쉬지마.


평상심이 도 해감서 선 가르친다 자들도
(아마도 그들은 고요하고 평온함이 일렁이고 지지고 볶는 중에도 그대로 느껴져서 인지는 모르겠다)
무슨 소리를 들어봐도 니가 문제일 뿐 문제가 없단다.
니가 못 봐서 그래 니가 흔들려서 그래.. 이런 소리들 한다...

보기에 그냥 찾는 게 다른 경우거나,
직답 안하고 배배 꼬는 건데... 그렇게 꼬인 거 드러내고 싶냐.
바로 이거 짚어 줄 거 아니면... 그거 가학이다. 쌉개소리 하지마.

전제 흩틀기의 대표적인 시전이 '몸이 니가 아니다' ..놓고 지랄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옮긴다.
안보인다고 막 지르는데... 심술 난 애들이 '내 맘이다 왜~'와 뭐가 다르냐?

몸,맘 같으면서 다른 이름이다.
보인다는 모양이면 몸, 보이지 않지만 느낌은 마음.
사실 몸이라는 체계가 스스로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생명활동 아니냐?

과학.의학적으로는
(골격계,혈관계,근육계,소화계,분비계,신경계,호흡계,배설계,생식계,피부계,면역계 아따...)
이것들에서 뇌와 관련이 많은 신경계 관련이 많다지만
애초에 맘이란 단어가 통칭이고 포괄이라...

맘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생존과 안식에 위협, 불편한 상황 체험이
고통에 대한 기억(반응 회로 같은 것)을 만들고
그게 반복되면 바로 반응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그러니까 어디 어떤 지점부터 문제가 되는 지...
그럼 그 해결법은 뭔지 그걸 알려줘야지...

(진짜 수 만가지 이야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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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 보기엔 이렇다.

인간이란 짐승의 몸은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바른 먹거리, 편안한 집 이런 거 되면
기본적으로 고민 번뇌 별것 없다.

4지 달렸고 뇌가 있으니 정확히 알려주면
움직일 때 그칠 때 지 알아서 한다.
(실상은 먹고(먹거리) 싸는 문제(배설물)도 제대로 풀려있지 않다.)

배고픔, 질병이 없는 몸이 유지해 갈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그런데 이것이 안되는 사람들이 적잖고,
수행해서 뭔가 했다면 같잖은 소리 보다 떠들 영역은 여기다.
어찌 보면 생계 조건이 비슷하지 않나? 부처님 덕분에 걱정이 없나?)
그 나머지가 전도몽상이다.

생존권 확보와 부의 추구는 노예시스템의 전형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정혈 빠는 그물망이고...

대부분 이상한 중독 현상 같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욕인데,
노예생산의 이유도 있고
사랑타령 노예생산운동 가스라이팅도 심하고,
중독자가 너무 많고 관련된 것도 너무 많아서
(대표적인 것이 잘난 수컷, 잘난 암컷 ... 이게 거래이자 부와 권력까지 연결된다)
대부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 대놓고 중독시켜 놓은 것들이
술, 담배, 설탕, 도박.게임성 놀이, 운동, 무엇이든 현란함...
대부분 다 심하게 비용 들어가는 일들이다. 그러나 안해도 된다.

정작 공기, 물, 먹거리, 집... 이것에 진심인 적이 없다.
(진심이었으면 아직 안 풀렸을 리가 없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여기다 탐욕의 빨대 꽂는 데는 진심이지... 
그러니 지옥을 벗어날 놈이 몇 이나 되겠냐.

간접적으로 듣기에
이런 습성들은 몸이 없어져도 일정 정도 유지 된다.
거기에 따라 조건이 되어 몸이건 존재방식이 붙는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살이 동안에 천국 못 보고, 해탈 안되면 그거 안된다는 거다.

공기, 물, 먹거리, 집... 이거 되는 상태에서
몸,맘,숨 잘 고르면서 균형을 잘 맞추면 
아주 쉽게 적정한 상태로 들 수 있다...고 

그런 다음에 온전한 사유에 들던 뭘 하던...
어떤 상태인지도 감도 없이 상상으로 집을 지을 건가?

---

나에게 있어 불교의 매력은 구체적이고 명쾌함에  있다.
먹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에
먹는 것에는 때와 양이 있다.     지린다...

2023년 6월 8일 목요일

당쩌는 밀가루 과자 - 고통스런 죽을 맛이군...

과자 - 가공식품 - 제조비, 유통비 낮추는 것이 1차 목적.

당 - 장기보관, 좋은 당을 썼을리가

밀가루 - 조직없는 가루

첨가물 - 뭘 넣었는지 모르지만 향부터... 우유 추출물 계열인가?


누xx네 먹었어... 배고픔을 달래려고... 

그런데 잇몸에 안좋은 것은 물론이고

속까지 뒤집어 놓더군... 지독한 통증까지... 

이런 과자가 먹고 괜찮은 사람 있을까?

몸이 인지 반응을 주지 않는다면 큰 병 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과자는 나쁘지만, 

그 중에서도 데미지를 바로 주는 형태.

2023년 6월 6일 화요일

명상(瞑想·冥想, meditation)

想 : 생각

瞑 (눈을) 감다. 瞑想 생각을 감다(눈을 감듯 생각을 감는다).

冥 (닫거나 감아서) 어둡다. 冥想 생각을 닫아서 생각이 꺼진.어두운 상태. 

묵상(默想) 생각 그쳐 사라져 잠잠한 상태.

Meditation 깨어 있지만 생각이 그친 상태


생각이란 작용이 멈춘 상태 - 분명 깨어 있다.

이렇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난 줄 알고 

생각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안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관찰觀察할 수 있다.


행위의 깊이에 따라 작용 다양하지만

단순한 의미로는 위와 같다.

사이비 판별법

돈, 시간, 복종을 요구한다.


앞에서 뭔가 알짱대면 꼬드김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돈, 복종 이런 거다.
즉 그 꼬드김의 목적은 '지배하기' = '노예 만들기'다.


천문, 지리, 온갖 모양으로 신비로움을 강조한다. 자기 정당성 강화로 이어진다.
온갖 예언과 연결 지어 정당성으로 연결 짓는다.
지푸라기 빗자루 날씨 따위에도 기대어 자기 정당화를 한다.


어떤 곳이라도 어떤 규모더라도 무엇을 외치더라도... 저런 것이 공통점이다.
자기 사사로운 맘대로 부릴 노예를 원하는 것이다.
국가, 단체, 종교, 이념, 학문 ... 온갖 것도 이것을 가리지 않는다.
(사이비 아닌 게 없는 건가? 뭏든...)


이런 것을 볼 때 어떻게 봐야 하느냐...
오죽ㅇㅇ하면 저럴까. 발광을 하라니까 지랄발광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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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이 나타나고 사라져도
우리는 인지조차 하지 않잖아.
그렇기 때문에 편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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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들이 이상한 허천병든 환자일 리가 없잖아.


먼지 같은 인연이라도 분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몸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멀리 한다. 못 피하면 부딛치는 거지.


몸이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욕구도
들어주지 않으면 무너지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일체 욕망이 없다. 바라는 것 자체가 장애를 드러내며 검증하는 짓이다.

아티샤의 명상 요결

출처 : https://ksdsang0924.tistory.com/8519


아티샤의 구전 전통에 기초하여

체카와 예셰 도르제Chekwa yeshe dorje가 기록하다

 

첫 번째 요결 : 예비적인 것들 ---마음을 전화시키는 네 가지 생각

 01. 먼저, 예비적인 것들을 수련하라.

 

두 번째 요결 : 절대적 보리심과 상대적 보리심을 계발하는 것

 02. 일단 그대가 안정성을 성취했다면, 신비를 드러내라.

 03. 모든 현상을 꿈처럼 생각하라.

 04. 태어나지 않는 의식의 본성을 탐구하라.

 05. 치유 방법 그 자체도 있는 그대로 자유롭다.

 06. 그 길의 본성은 우주적 근원 속에서 쉬는 것이다.

 07. 명상의 중간에는 가상의 사람이 되라.

 08. 교대로 주고받는 수련을 하라.

 09. 당신의 호흡에 두 가지 모두를 태우라.

 10. 세 가지 대상, 세 가지 독, 세 가지 덕의 근원.

 11.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서 말을 사용해 수행하라.

 

세 번째 요결 : 역경을 영적인 각성을 위한 도움으로 변형시키는 것

 12. 전 세상이 악의 노예가 될 때, 역경을 영적인 각성을 위한 도움으로 변형시키라.

 13. 하나의 범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라.

 14.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친절함에 숙고하라.

 15. 망상의 현상들을 네 가지 몸으로 명상을 할 때, 텅 빔이 최고의 보호책이 된다.

 16. 최고의 전략은 네 가지 수행을 하는 것이다.

 17.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날 때마다 즉시 명상에 적용하라.

 

네 번째 요결 : 한 생을 위한 수행의 종합

 18. 실제적인 지침의 정수를 종합하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 힘에 전념하라.

 19. 의식을 변화시키는 대승의 가르침은 바로 이 다섯 가지 힘이므로, 당신의 행동이 중요하다.

 

다섯 번째 요결 : 마음수련에 있어서 숙달의 기준

 20. 모든 다르마는 하나의 목표로 통합된다.

 21. 두 목격자 중 주요 목격자에 주의를 기울이라.

 22. 항상 즐거운 마음에 의지하라.

 

여섯 번째 요결 : 마음수련의 서약들

 23. 항상 세 가지 원칙을 지키라.

 24. 당신의 우선순위를 바꾸되, 있는 그대로 머물러.

 25.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라.

 26.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27. 보상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려라.

 28. 독이 든 음식을 피하라.

 29. 독선에 빠지지 말라.

 30. 악의로 비꼬지 말라.

 31. 매복하며 기다리지 말라.

 32. 조의 짐을 소에게로 지우지 말라.

 33. 정상이 되려고 아첨하지 말라.

 34. 가식을 피하라.

 35. 신의 차원을 악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지 말라.

 36.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지 말라.

 

일곱 번째 요결 : 마음수련법의 교훈들

 37. 모든 명상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라.

 38. 모든 낙담의 시기들을 한 가지 방식으로 대처하라.

 39. 시작과 끝에 두 가지 임무가 있다.

 40. 둘 중 어느 것이 일어든 인내하라.

 41. 목숨을 걸고라도 두 가지는 지키라.

 42. 세 가지 어려운 것을 하라.

 43. 세 가지 중요한 원인을 획득하라.

 44. 세 가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계발하라.

 45. 세 가지가 덕행에서 분리되지 않게 하라.

 46. 항상 특수한 사람들을 명상하라.

 47. 다른 요소들에 의존하지 말라.

 48. 이제 중요한 것을 수행하라.

 49. 과오를 법하지 말라.

 50. 불규칙적으로 수행하지 말라.

 51.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수행하라.

 52. 조사와 분석으로 당신 자신을 해방시켜라.

 53.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 애쓰지 말라.

 54. 화에 사로잡히지 말라.

 55. 신경질 내지 말라.

 56. 감사를 바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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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샤의 명상요결 전문 


∙ 첫 번째 요결 : 예비적인 것들 

먼저, 예비적인 것들을 수련하라. 


∙ 두 번째 요결 : 절대적인 보리심과 상대적인 보리심을 계발하는 것 

일단 그대가 안정성을 성취했다면, 신비를 드러내라. 

모든 현상을 꿈처럼 생각하라. 

태어나지 않는 의식의 본성을 탐구하라. 

치유 방법 그 자체도 있는 그대로 자유롭다. 

그 길의 본성은 우주적 근원 속에서 쉬는 것이다. 

명상의 중간에는 가상의 사람이 되라. 

교대로 주고받는 수련을 하라. 

당신의 호흡에 두 가지 모두를 태우라. 

세 가지 대상, 세 가지 독, 세 가지 덕의 근원.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서 말을 사용해 수행하라. 


∙ 세 번째 요결 : 역경을 영적인 각성을 위한 도움으로 변형시키는 것 

전 세상이 악의 노예가 될 때, 역경을 영적인 각성을 위한 도움으로 변형시키라. 

하나의 범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라.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해서 숙고하라. 

망상의 현상들을 네 가지 몸으로 명상할 때, 텅 빔이 최고의 보호책이 된다. 

최고의 전략은 네 가지 수행을 하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날 때마다 즉시 명상에 적용하라. 


∙ 네 번째 요결 : 한 생을 위한 수행의 종합 

실제적인 지침의 정수를 종합하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 힘에 전념하라. 

의식을 변화시키는 대승의 가르침은 바로 이 다섯 가지 힘이므로, 당신의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 다섯 번째 요결 : 마음수련에 있어서 숙달의 기준 

모든 다르마는 하나의 목표로 통합된다. 

두 목격자 중 주요 목격자에 주의를 기울이라. 

항상 즐거운 마음에 의지하라. 


∙ 여섯 번째 요결 : 마음수련의 서약들 

항상 세 가지 원칙을 지키라. 

당신의 우선순위를 바꾸되, 있는 그대로 머물라.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보상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라. 

독이 든 음식을 피하라. 

독선에 빠지지 말라. 

악의로 비꼬지 말라. 



매복하며 기다리지 말라. 

조의 짐을 소에게 지우지 말라. 

정상이 되려고 아첨하지 말라. 

가식을 피하라. 

신을 악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지 말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지 말라. 


∙ 일곱 번째 요결 : 마음수련법의 교훈들 

모든 명상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라. 

모든 낙담의 시기들을 한 가지 방식으로 대처하라. 

시작과 끝에 두 가지 임무가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일어나든 인내하라. 

목숨을 걸고라도 두 가지는 지키라. 

세 가지 어려운 것을 수행하라. 

세 가지 중요한 원인을 획득하라. 

세 가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계발하라. 

세 가지가 덕행에서 분리되지 않게 하라. 

항상 특수한 사람들을 명상하라. 

다른 요소들에 의존하지 말라. 

이제 중요한 것을 수행하라. 

과오를 범하지 말라. 

불규칙적으로 수행하지 말라.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수행하라. 

조사와 분석으로 당신 자신을 해방시키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 애쓰지 말라. 

화에 사로잡히지 말라. 

신경질 내지 말라. 

감사를 바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