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0일 토요일

추천 다큐멘터리

Zeitgeist 1,2,3
Sicko  - Michael Moore 2007
Where to invade next - Michael Moore 2015
Winter on Fire - Director: Evgeny Afineevsky Writer: Den Tolmor 2015

직관하고 싶거든 아는 것을 모두 버려라.

2016년 4월 26일 화요일

인공지능은 인간이 쓸모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인간탐욕 극성으로 표출되던
깨달은 자보다 더 무심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던
인공지능은 인간종은 쓸모 없다 판단할 것이다.

2016년 3월 20일 일요일

사랑이란게 아프다면 바램이 폭력이 돼기 때문이다.

사랑타령이 지겨워서 싫기도 하다.
아슴아슴한데 사랑이란 것 아팠다.
좋지 않은 모습은 다 보인 것 같다.

왜일까 바라기 때문이다.
이유도 근거도 없이 바란다.
상대가 상하지 않으면 자기가 상한다.
지금에서야 이는 생각이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져야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을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제서야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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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란다는 것.

바라는 것
그것도 사람에게 바란다는 것
얼마나 무서운 폭력이냐는 것.

바라는 것이 많은 세상은 폭력으로 어지럽다는 것.
더 무서운건 그것을 모른다는 것
모른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모른다는 것.

돌이켜 알아보고 버려 잊기가 많이 버겁기는 하지만
힘빼고 부지런히 하다보면 놓아질 때도 오는 것
편해질 때도 오는 것

그제서야 조금씩 눈이 떠지는 것.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Chord mojo 간단 청음기

연말,연초 개인적으로는 힘들게 지나고 있다.
몸고르기 하면서 한동안 몇년간 뜸했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신개념의 기기들은 가끔 검색했던 터라

청담동 소리# 1시간 20정도 청음.

집에서 듣는 환경은
foobar2000 - Yulong DA8 - Bose soundlink mini
스펙이야 Yulong DA8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DSD512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가끔 치직거릴 수 있다는

청음은
아스텔앤컨(AK380)-opt광-Chord mojo- Sennheiser IE800

처음.두번째 건네준 이어폰이 좀 그래서 IE800을 기다렸다가 30분쯤 청음.

IE800으로 바꾸니 확연히 다르게 들렸다.
찰랑이는 고음 소리는 이어폰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가 났다.

무대는 넓지 않고 연습실 정도 수준이다.
조용했더라면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다.
IE800의 문제인지 Chord mojo의 문제인지 AK380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이이폰으로 듣는 것이 문제인지도.

소리가 간결할 때는 44.1k과 48k가 더 선명하게 들릴때가 있다.
정보량이 많은 소스일수록 먹듯 답답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은 노이즈 때문일지도.

문제는 저음이었는데, 전방으로 무대가 그려지지 않았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음이니까 드라이버가 크게 진동할 것이고 가까이 들린다.
저음이 깊고 명료하게 감싸고 깔려주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서 둥둥이 나대는 느낌이랄까.

번인도 안되어 있고 환경이 그렇고 해서 아쉬웠다.

구매과정의 귀찮음이 있어서 그자리에서 바로 구매하려했으나,
말리는 것인지 재고가 없었다.

저음의 문제에도 구매를 하려 결정한 이유는,
배터리구동에 이만한 스펙과 사이즈로 나온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개선할 점이라면
- 아날로그 이후 선형성, 저음의 문제
  - 더 연구하고 class A로 가야하지 않을까.
  - 소출력 class A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 같던데.

- lighting cable - usb c type
  - 더 여유로운 대역폭과 편리함.
  - 오디오쪽은 아직까지 usb 3.0도 가지 못했다.
    이득이 없는 것인지 연구를 안하는 것인지.

사이즈는 불필요한 공간을 줄이고 필요하다면
약간 두꺼워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인거다.

아마도 1여년 후 쯤에는 개선된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작은 것은 이동이 편해서 용도가 좋다.

지금 Bose soundlink mini로 베토벤 심포니를 듣는데
오디오적으로 별로 봐줄만 한게 없는데
참 그럴싸하게 들린다.

foobar를 통해 DSD로 변환이나 업샘플해서 듣는 것은 매력적이다.

2016년 1월 9일 토요일

죄무자성종심기 - 罪無自性從心起

죄무자성종심기 - 罪無自性從心起
죄(罪)는 스스로 그러함이 없고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
는 구절인데, 이거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해서... 죄라할 것이 없다.. 죄가 없다.로 해석하는 종교인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종교를 버려라.

경전의 글귀는 남에게 지적질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수행자를 위한 것이고 바깥이 아닌 안쪽을 살피는 가르침이다.

보는 견해를 가르치려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에 맞을까?

구절을 보자.

罪,無自性,從心起
죄,무자성,종심기

무자성(無自性)은 스스로 이렇다하는 것이 없다(아니다)이다.
쉬운 예로 하늘의 태양이 스스로 '해'라고 한 적 없다.
모든 이름지워진 것이 스스로 이렇다, 이런 이름이라 한 적 없다.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明)

일체가 마음이 지을 뿐이니 마음이 없으면 마음따라 일어나는 것도 해결되겠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調), 무심(無心), 종심기(從心起)

이렇게 풀어 놓고 보아도, 죄가 없다로 해석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봐도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닌데
마음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있으면 죄의 현상이 있다는 것.
마음없다는 사람이 있다한들
그럼 마음이 뭐냐? 무엇이기에 있다 없다 아니다. 하는가에 답을 해야할 것이며
마음이 일체를 짓는다 하니 마음이 없어져야 죄의 현상이 없어지는 것이
말의 구성으로도 맞지 않은가?

죄는 있다 없다의 것이 아니다.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
죄가 무자성이고 마음따라 일어난다면
그럼 마음이 문제인 걸로 일단락하고

또 하나가 - 무자성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일체 자연계가 무자성이라 아무 문제가 없는가?
그렇게 벗어났으면 된 것이고.

그것은 말뿐이고 당면한 것은 해결 된 것이 없어
말이나 생각일 뿐 실제로는 된 것이 없다면
무자성도 남겨둬라 유자성이던 무자성이던
그 도구적 말이 실체에 접근 못했다면 쓰이지 못한 것이지.

마음을 보기 위해
거창한 말 - 일체유심조(一切唯心調)에서  조調자를 네이버사전에서 보면
1. 고르다
2. 조절하다(調節--)
3. 어울리다
4. 길들이다
5. 꼭 맞다, 적합하다(適合--)
6. 지키다, 보호하다(保護--)
7. 비웃다, 조롱하다(嘲弄--)
8. 속이다, 기만하다(欺瞞--)
9. 뽑히다, 선임되다(選任--)
10. 부르다, 불러내다
11. 걷다, 징발하다(徵發--)
12. 조사하다(調査--)
13. 옮다, 전근하다(轉勤--)
14. (곡식을)내다
15. (악기로)연주하다(演奏--)
16. 갖추다, 준비하다(準備--)
17. 헤아리다, 살피다
18. 부드럽다
19. 구실(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20. 가락, 음률(音律)
21. 취향(趣向), 운치(韻致)
a. 아침 (주)
b. 무겁다 (주)

이렇게나 많다.

길들이다, 부르다, 조절하다 로 보면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길들인, 부른, 조절(정)한 것이다.

그래 다시  -- 마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견해를 놓는다.

몸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
밝혀지지 못한 영역.

요즘 시대는 뇌과학, 뇌신경 등으로 매우 미시적 영역까지
연구하는 시대이다.

어떻게 사느냐도 몸과 영향을 주고 받고
어떤 입장에 있느냐도 몸과 영향을 주고 받는 것.

생각이란 것도 미시적으로 전류의 흐름 현상까지 잡아내는 시대이다보니...

보이지 않는 몸의 영역을 마음이라고 하고 싶다.
- 몸을 기반하여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현상.
몸이 없는 것처럼 아주 원만한 상태에서는 별생각이 없어서이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찌할 빌미도 없는 것.
그럼 종교며 수행이며 이런 것이 다 뭐냔 말이지.

석가의 수행과정도 몸과 마음으로 했다고 본다.
결국 생.노.병.사도 몸(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 아닌가?

먹고,자고,싸고,쉬고,입고,놀고,일하고 다 몸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확인하고 정리하고 마음의 영역이라도 결국
다 몸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몸은 보이되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잘 검증해가면 잘 살필수 있다.

몸을 자석으로 본다면 마음은 자장과 같다.

그런데 자석과 다르게
우리의 몸은 가늠 이상으로 정밀하며
정지되어 있을 때도 쉼없이 움직인다.
난감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조절할 수도 있다.

자세히 알려면 그만큼 깊고 미세한 영역까지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정도로 하고 다시
죄무자성종심기 - 罪無自性從心起 를 보면

약간 다른 관점으로 보이지 않은가?

죄는 뭘까? 옥죄는 것 - 장애다.
죄와 관련된 모든 것은 자유롭지 않다. 반대로 봐도 된다.
그러니 잘 살펴서 스스로 짓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