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본 것 중에 흔하지 않은 것이다.
이야기 소재는 매우 비현실적이다.
탈옥수와 아들과 사는 무기력한 아낙네 3인이 어느 철에 며칠간의 이야기다.
이야기답지 않게 진행도 잔잔하며 음악도 잔잔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한 점은
'조우'와 '충동' 문제다.
영화내용은 충동으로 인한 많은 우연이 일어난다.
인간이 모여살고 움직이기에 원하던 아니던 만나게 된다.
부디치다보면 여러가지 충동이 일어난다.
영화의 줄거리는 하두 엉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지만,
늘 이런 것이 인간살이인데, 인간살이 어찌할 것이냐
화두같은 것이 다가왔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무위(無爲)란
제가 알게된 無爲는 이렇습니다.
무위(無爲)란
爲:=意爲=僞 - 의도적 행위 또는 작위적 행위가 아닌
의도나 꾸밈이 없는 함
그럼 그냥무냥이란 말인가? 아니다.
- 天眞爛漫,純眞無垢 - 있는 그대로요 걸림이 없다.
老子 - 道德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늘 도(고정적 실체가 있는)가 아니며,
이름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은 늘 이름(고정적 실체가 있는)이 아니다.
이것이 첫걸음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까지 언어의 수사와 형상을 날려 버립니다.
의식의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때, 이름은 이름일 뿐.
하나니 만상이니 하는 것들이 다 생각일 뿐이네.
실상은 있는 그대로네.
無極=太極
아무것도 없는 또 만상이 펼쳐진... 그냥 있는 이것.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견성, 깨달음 뭐 그렇게들 이야기합니다.
하나,근원,생명 - 그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내면으로(단지 상대적 비유일뿐) 이 절대(무주상:머물 상이 없는)의 시각에서
만상의 상대계를 보면 있는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 그때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 상태를 온전히 해가며 살 뿐입니다.
그래서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矣.
천하가 대개 아름답다 알고 아름답게 여기고, 미움을 가른다.
皆知善之爲善,斯不善矣.
대개 좋다 알고 좋게 여기고, 좋지 않음을 가른다.
故 그러므로(이런 것을 비추어 보아)
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形,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
있고 없음이 서로 내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 모양짓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고,
울림과 소리는 서로 이끌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서로 하나의 개념이니)
是以聖人處「無爲」之事,行「不言」之敎。
이래서 성인은
하지(덧대지,꾸미지,속지) 않음을 일로 삼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함에 머문다.
참 많은 말로 또는 형언할 수 없는 이 무언가, 느낌이 옵니까?
노자는 聖人의 길을 제시하고 노래하지만
眞人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저의 표현으로는 '생명과 하나되어 버린 자' 입니다.
생명을 인지하는 자와 생명과 하나되어 버린 자는 ... 뭐 좀 다르겠죠.
진.선.미 라는 것도
생명을 眞이라고 봤을 때
眞 <- 善 <- 美 이렇게 상속계보입니다.
참이라야 좋고 좋아야 아름답다.
착하다로 해석해도 참에 착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풀려갔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시각이 이렇게 변하면 사람이 좀 이상해 집니다.
이 때까지 배워져왔던 도덕관념이 깨지고 그냥 보여지게 됩니다.
소위
인본이니
가치니
진보니
이런 용어들을 남발하는 사람들 보면
'이렇게 하면 소탈?한 내 욕망이 채워질까?' 해서 그냥 주절거기는 것 뿐입니다.
저에게 읽혀지는 속마음은 다 그런 거였습니다.
그냥 욕지기일뿐 그것이 무엇이든 별 상관은 없어 보였습니다.
누구나 인정할만큼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도
그저 '내 가치가 더 옳아' 하면서
상대방에게 개거품 물며 비아냥, 비난, 욕짓거리하려는 장식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다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왜 그러냐면,
어짜피 욕계 중간쯤에 있는 인간계에서 더 부지런히 탐욕하는 자가
더 큰 권세를 얻는 구조라면
대체로 '내가 바르다'는 선량한 사람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힘들게 하는 반대편의 탐욕에 대한 부지런함, 무경계함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그 낚시바늘에 꿰어 버렸거든요.
조금 편해지면 홀랑홀랑 나른나른 해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쌓여진 인연에 따라 표출되기 시작하면
온갖 것을 원망하며 통곡합니다.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바램을 갖습니다.
판때기 만들고 토끼몰이 한 자들은 별도로하고
그 판때기 알아보고 수백만이 아파트투기하는 걸 보면 ...
(적어도 그렇게 악바리로 부지런한 자가 더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럼 굶어 죽으란 말이냐' 할 사람 많겠지만
차라리 굶어 죽겠다.. 라는 사람 ... 글쎄요.
바라는 걸 가만가만 들어보면
모두가 풀 수 있는 것이고
그 단초는
있는 그대로 보고 문제 풀어갈 자에게
가볍게 표하나 던져주고,
그 표관리,표권관리 잘 하는 겁니다.
그 다음
주거도 공동구매
보험도 공동구매
변호사도 공동구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동구매하면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인프라를 만들어가면 기본적인 것 다 됩니다.
욕망의 충돌은 기본(의식주거)을 건드리지 않는 영역에서만 하도록 하는 거죠.
탐욕은 항상 타인의 생명과 안전, 의식주거, 인프라를 파고 듭니다.
그곳에라야 제대로 된 빨대거든요.
제대로 낚시바늘을 꿰놔야 원하는대로 부릴 수 있거든요.
그거 발견한 것을 뭐 대단한 양 할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거잖아요.
민주주의? 이 용어자체가 .. 만인이 주인이라는 생각인데요.
내가 주인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뭐 해보는데까지 해보지만 헛지랄일 수도...
있는 그대로 그냥 살지머. 이 정도죠....
----------
天地不仁爲仁
天心無心爲心
뒷구절은 제가 붙인 겁니다만,
천지자연은 사랑이 아님을 사랑으로 삼습니다.
천심은 마음없음을 마음으로 삼습니다.
둘다 인간에게는 무서운 말입니다. 안봐줍니다.
民心而天心
민심이 천심처럼 무심(편견없이 정확)하고 인정사정이 없어야 뭐가 좀 될텐데...
욕망따라 할랑할랑 이랬다가 저랬다가
뭐 어쩌라구요.
------------
소위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라면.. 주인이라면
주인이 욕망따라 행동할까요?
주인이라면 다먹여야 하는데 살림을 도적에게 맡길까요?
대체로 주인들 아닙디다.
두리번 거리는 객이지요.
주인이라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무심히 할 일 합니다.
-------------
다시 無爲로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에 따라 행할 뿐.
眞-善-美 로 펼쳐지는 무심한 상태로 살뿐..
인간들이 무위자연,소요유.. 이런 이야기 들으면
할랑할랑 또는 소박한 소시민 이런 거 생각하는 데...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무주상으로 끊임없이 찰나찰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인데
어떤 인간도 헤아릴 수 없이 쉼없이 자연이 움직이는데
어찌 할랑거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분노는 말할 것도 없고 힘을 주면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 뿐
자기편견을 다 내려 놓아야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는데
어찌 한순간이라도 헤이해지겠습니까?
숨은 노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명과 하나되는 길을 가기게
욕망은 물론이고 어떤 견해나 경계도 다 내려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과 하나된 자가 생명이 가는대로 그냥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無爲입니다.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할 일을 그냥 한다... 입니다.
욕망,견해,논리 이런 거 전개 안합니다. 無心합니다.
無心 - 온갖 견해,번뇌가 없어지지 않으면
생명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방향을 모릅니다.
養神,養身,養生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이 그냥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욕망,견해,번뇌 그런 것에 걸리거나 거쳐지지 않고
그냥 나오게 생명에너지가 직사되도록 한다고나 할까요.
逍遙遊소요유,彷徨방황 - 노닌다
---------
老子,莊子,孔子 - 이거 철학?같은 용어를 써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들 다 생명에 이르고 생명으로 사는 일에 대한 길을 노래한 것입니다.
수천만 말이 있으나 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풀릴 것입니다.
분석을 잘한다고 그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잘하면 좋은데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
사람들이 자기 수양을 위해 이런 책들을 많이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진탕 현실정치에 연결하려는 것은 거리가 있고
다만 여러 수양이 좀 된 사람들이
생명이 펼쳐지는 원리를 따라 정치에 적용해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것이 모두가 주인인데
모두가 주인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上德不德은
天地不仁爲仁
天心無心爲心
이것으로 대신하고
욕망에 퐁당한 인간들은 이해에 맞지 않으므로 不德하다 할 것입니다.
---
욕망의 끝은 폭력이고 파괴입니다.
전쟁이 그 극치일 것입니다.
생명은 무심합니다. 바탕은 늘 온화할 뿐.
생명이 늘 온화한 빛이기 때문에
그냥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늘 항상
---
희.노.애.락.애.오.욕 은 어찌할 것이냐.
전개되는 작용일 뿐입니다.
조건에 따라 오는 것은 조건에 따라 사라질 뿐.
끄트머리 포말을 가지고 물을 논할 것은 아니지요.
----
얘기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적었습니다만,
다시 無爲로 돌와오면
無爲는 생명으로 그냥 사는 겁니다.
무위(無爲)란
爲:=意爲=僞 - 의도적 행위 또는 작위적 행위가 아닌
의도나 꾸밈이 없는 함
그럼 그냥무냥이란 말인가? 아니다.
- 天眞爛漫,純眞無垢 - 있는 그대로요 걸림이 없다.
老子 - 道德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늘 도(고정적 실체가 있는)가 아니며,
이름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은 늘 이름(고정적 실체가 있는)이 아니다.
이것이 첫걸음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까지 언어의 수사와 형상을 날려 버립니다.
의식의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때, 이름은 이름일 뿐.
하나니 만상이니 하는 것들이 다 생각일 뿐이네.
실상은 있는 그대로네.
無極=太極
아무것도 없는 또 만상이 펼쳐진... 그냥 있는 이것.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견성, 깨달음 뭐 그렇게들 이야기합니다.
하나,근원,생명 - 그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내면으로(단지 상대적 비유일뿐) 이 절대(무주상:머물 상이 없는)의 시각에서
만상의 상대계를 보면 있는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 그때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 상태를 온전히 해가며 살 뿐입니다.
그래서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矣.
천하가 대개 아름답다 알고 아름답게 여기고, 미움을 가른다.
皆知善之爲善,斯不善矣.
대개 좋다 알고 좋게 여기고, 좋지 않음을 가른다.
故 그러므로(이런 것을 비추어 보아)
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形,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
있고 없음이 서로 내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 모양짓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고,
울림과 소리는 서로 이끌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서로 하나의 개념이니)
是以聖人處「無爲」之事,行「不言」之敎。
이래서 성인은
하지(덧대지,꾸미지,속지) 않음을 일로 삼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함에 머문다.
참 많은 말로 또는 형언할 수 없는 이 무언가, 느낌이 옵니까?
노자는 聖人의 길을 제시하고 노래하지만
眞人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저의 표현으로는 '생명과 하나되어 버린 자' 입니다.
생명을 인지하는 자와 생명과 하나되어 버린 자는 ... 뭐 좀 다르겠죠.
진.선.미 라는 것도
생명을 眞이라고 봤을 때
眞 <- 善 <- 美 이렇게 상속계보입니다.
참이라야 좋고 좋아야 아름답다.
착하다로 해석해도 참에 착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풀려갔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시각이 이렇게 변하면 사람이 좀 이상해 집니다.
이 때까지 배워져왔던 도덕관념이 깨지고 그냥 보여지게 됩니다.
소위
인본이니
가치니
진보니
이런 용어들을 남발하는 사람들 보면
'이렇게 하면 소탈?한 내 욕망이 채워질까?' 해서 그냥 주절거기는 것 뿐입니다.
저에게 읽혀지는 속마음은 다 그런 거였습니다.
그냥 욕지기일뿐 그것이 무엇이든 별 상관은 없어 보였습니다.
누구나 인정할만큼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도
그저 '내 가치가 더 옳아' 하면서
상대방에게 개거품 물며 비아냥, 비난, 욕짓거리하려는 장식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다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왜 그러냐면,
어짜피 욕계 중간쯤에 있는 인간계에서 더 부지런히 탐욕하는 자가
더 큰 권세를 얻는 구조라면
대체로 '내가 바르다'는 선량한 사람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힘들게 하는 반대편의 탐욕에 대한 부지런함, 무경계함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그 낚시바늘에 꿰어 버렸거든요.
조금 편해지면 홀랑홀랑 나른나른 해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쌓여진 인연에 따라 표출되기 시작하면
온갖 것을 원망하며 통곡합니다.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바램을 갖습니다.
판때기 만들고 토끼몰이 한 자들은 별도로하고
그 판때기 알아보고 수백만이 아파트투기하는 걸 보면 ...
(적어도 그렇게 악바리로 부지런한 자가 더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럼 굶어 죽으란 말이냐' 할 사람 많겠지만
차라리 굶어 죽겠다.. 라는 사람 ... 글쎄요.
바라는 걸 가만가만 들어보면
모두가 풀 수 있는 것이고
그 단초는
있는 그대로 보고 문제 풀어갈 자에게
가볍게 표하나 던져주고,
그 표관리,표권관리 잘 하는 겁니다.
그 다음
주거도 공동구매
보험도 공동구매
변호사도 공동구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동구매하면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인프라를 만들어가면 기본적인 것 다 됩니다.
욕망의 충돌은 기본(의식주거)을 건드리지 않는 영역에서만 하도록 하는 거죠.
탐욕은 항상 타인의 생명과 안전, 의식주거, 인프라를 파고 듭니다.
그곳에라야 제대로 된 빨대거든요.
제대로 낚시바늘을 꿰놔야 원하는대로 부릴 수 있거든요.
그거 발견한 것을 뭐 대단한 양 할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거잖아요.
민주주의? 이 용어자체가 .. 만인이 주인이라는 생각인데요.
내가 주인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뭐 해보는데까지 해보지만 헛지랄일 수도...
있는 그대로 그냥 살지머. 이 정도죠....
----------
天地不仁爲仁
天心無心爲心
뒷구절은 제가 붙인 겁니다만,
천지자연은 사랑이 아님을 사랑으로 삼습니다.
천심은 마음없음을 마음으로 삼습니다.
둘다 인간에게는 무서운 말입니다. 안봐줍니다.
民心而天心
민심이 천심처럼 무심(편견없이 정확)하고 인정사정이 없어야 뭐가 좀 될텐데...
욕망따라 할랑할랑 이랬다가 저랬다가
뭐 어쩌라구요.
------------
소위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라면.. 주인이라면
주인이 욕망따라 행동할까요?
주인이라면 다먹여야 하는데 살림을 도적에게 맡길까요?
대체로 주인들 아닙디다.
두리번 거리는 객이지요.
주인이라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무심히 할 일 합니다.
-------------
다시 無爲로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에 따라 행할 뿐.
眞-善-美 로 펼쳐지는 무심한 상태로 살뿐..
인간들이 무위자연,소요유.. 이런 이야기 들으면
할랑할랑 또는 소박한 소시민 이런 거 생각하는 데...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무주상으로 끊임없이 찰나찰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인데
어떤 인간도 헤아릴 수 없이 쉼없이 자연이 움직이는데
어찌 할랑거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분노는 말할 것도 없고 힘을 주면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 뿐
자기편견을 다 내려 놓아야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는데
어찌 한순간이라도 헤이해지겠습니까?
숨은 노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명과 하나되는 길을 가기게
욕망은 물론이고 어떤 견해나 경계도 다 내려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과 하나된 자가 생명이 가는대로 그냥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無爲입니다.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할 일을 그냥 한다... 입니다.
욕망,견해,논리 이런 거 전개 안합니다. 無心합니다.
無心 - 온갖 견해,번뇌가 없어지지 않으면
생명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방향을 모릅니다.
養神,養身,養生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이 그냥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욕망,견해,번뇌 그런 것에 걸리거나 거쳐지지 않고
그냥 나오게 생명에너지가 직사되도록 한다고나 할까요.
逍遙遊소요유,彷徨방황 - 노닌다
---------
老子,莊子,孔子 - 이거 철학?같은 용어를 써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들 다 생명에 이르고 생명으로 사는 일에 대한 길을 노래한 것입니다.
수천만 말이 있으나 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풀릴 것입니다.
분석을 잘한다고 그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잘하면 좋은데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
사람들이 자기 수양을 위해 이런 책들을 많이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진탕 현실정치에 연결하려는 것은 거리가 있고
다만 여러 수양이 좀 된 사람들이
생명이 펼쳐지는 원리를 따라 정치에 적용해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것이 모두가 주인인데
모두가 주인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上德不德은
天地不仁爲仁
天心無心爲心
이것으로 대신하고
욕망에 퐁당한 인간들은 이해에 맞지 않으므로 不德하다 할 것입니다.
---
욕망의 끝은 폭력이고 파괴입니다.
전쟁이 그 극치일 것입니다.
생명은 무심합니다. 바탕은 늘 온화할 뿐.
생명이 늘 온화한 빛이기 때문에
그냥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늘 항상
---
희.노.애.락.애.오.욕 은 어찌할 것이냐.
전개되는 작용일 뿐입니다.
조건에 따라 오는 것은 조건에 따라 사라질 뿐.
끄트머리 포말을 가지고 물을 논할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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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적었습니다만,
다시 無爲로 돌와오면
無爲는 생명으로 그냥 사는 겁니다.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pc-fi 정리, 전원케이블 테스트
pc-fi 정리, 전원케이블 테스트
최소 5~6년의 경험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스피커는 파워내장 모니터를 하나 장만했고 그 뒷단은 대상이 아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1. 전원
- 접지
- 극성
- 선재와 플러그
- 배선
2. source
- OS
- format
- DAC
-----
1. 교류전원
전원에서 요점은 접지,극성,선재와 플러그이다.
많은 이야기를 해도 서너가지로 요약된다.
- 접지
교류는 주파수가 있어 깨끗한 파형을 위한 기본이고
직류는 바닥에 해당한다.
소리의 영향은 안정되고 힘이 있고 맑아진다.
접지는 1순위로 잡아야 할 것이다.
- 극성
극성이 맞지 않으면 소리가 짜증난다.
극성이 맞으면 매끄럽고 편안하다.
음감이 예민하면 검전드라이버 만으로도 잡을 수 있다.
한국의 220V는 둥근단자 2개와 접지로 되어 있어
hot,cold,ground 3개이고 둥근단자 둘중 하나가 hot로 이것만을 기준으로 하여 잡을 수 있다.
- 선재와 플러그,콘센트
"뭐 차이가 날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놈으로 교체해보면 '줸장'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 변화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
즉 선택사항이다. 다만 아래는 참고만 할 것.
Oyaide SWD GX-E(콘센트)-M1-Tunami cable-F1 -> DAC
Oyaide R1(110v용 콘센트)-P004-Acrolink 7N-C1 -> Speaker's Amplifier
이렇게 조립해서 바꾼 이유는
Anti-cable reference로 교체했을 때 좋아지긴 했지만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대다수가 인정하는 급으로 교체하게 된 것인데
급이 다르고 성향도 다르다. 이제 정리가 된 것이다.
웬만하면 아꼈다가 제대로 된 놈으로 교체하라고 하고 싶다.
직구조립하면 이름난 최상위 케이블 1개 값도 안된다.
직구할 때는 총액이 15만원을 넘지 않도록 최대한 분산주문하시라.
세금 살벌합디다.
- 배선
컴퓨터,DAC,앰프 3개의 벽체콘센트는 따로따로 해주어 한다.
같은 콘센트에 연결하게되면 간섭으로 인한 거북함이 나타난다.
2. source
- OS
Window라면 Server 2012로 교체하시라.
다른 OS로는 깊이있게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foobar2000 - jplay ultrastream으로 구동하면
Hibernate처럼 멎어버리는 불편함도 없고 들을만하다.
jplay를 안쓰고 ASIO만으로도 window 7,8보다는 훨씬 낫다.
- format
PCM의 경우는
44.1,88.1,176.4,352.8
48,96,192,384
DSD의 경우는
DSD64,DSD128(256,512)
이렇게 있지만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 녹음 되었다면 CD음질부터 들어줄만 하지만
솔직히 352.8 이상, DSD는 128이상일 때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그러니 고음질 포맷을 들어본 이들은 더 높은 일테면
DSD1024,2048로 듣는 방법은 없냐는 식이다.
- DAC
PC로는 다양한 AV소스(파일,인터넷,TV)를 플레이 하므로 모두 지원해야 한다.
전원은 직류입력을 추천(케이블값 아끼시길).
DAC칩 이후 아날로드 단이 단단한 놈을 추천한다.
네트워크 플레이는 글쎄 Gbps라면 NAS정도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
tera bps 유.무선 네트워크이 자유로워질 때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프리,파워,스피커 등을 언급하지 못한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간도 없고, 기회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돈문제인가 싶다.
pc-fi에게는 잘 만들어진 액티브 모니터스피커를 추천한다.
네트워크 오디오 드라이버-이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Server 2012로 제대로 세팅해두고
네트워크로 드라이빙할 수 있다면 최적이지 않을까?
최소 5~6년의 경험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스피커는 파워내장 모니터를 하나 장만했고 그 뒷단은 대상이 아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1. 전원
- 접지
- 극성
- 선재와 플러그
- 배선
2. source
- OS
- format
- DAC
-----
1. 교류전원
전원에서 요점은 접지,극성,선재와 플러그이다.
많은 이야기를 해도 서너가지로 요약된다.
- 접지
교류는 주파수가 있어 깨끗한 파형을 위한 기본이고
직류는 바닥에 해당한다.
소리의 영향은 안정되고 힘이 있고 맑아진다.
접지는 1순위로 잡아야 할 것이다.
- 극성
극성이 맞지 않으면 소리가 짜증난다.
극성이 맞으면 매끄럽고 편안하다.
음감이 예민하면 검전드라이버 만으로도 잡을 수 있다.
한국의 220V는 둥근단자 2개와 접지로 되어 있어
hot,cold,ground 3개이고 둥근단자 둘중 하나가 hot로 이것만을 기준으로 하여 잡을 수 있다.
- 선재와 플러그,콘센트
"뭐 차이가 날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놈으로 교체해보면 '줸장'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 변화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
즉 선택사항이다. 다만 아래는 참고만 할 것.
Oyaide SWD GX-E(콘센트)-M1-Tunami cable-F1 -> DAC
Oyaide R1(110v용 콘센트)-P004-Acrolink 7N-C1 -> Speaker's Amplifier
이렇게 조립해서 바꾼 이유는
Anti-cable reference로 교체했을 때 좋아지긴 했지만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대다수가 인정하는 급으로 교체하게 된 것인데
급이 다르고 성향도 다르다. 이제 정리가 된 것이다.
웬만하면 아꼈다가 제대로 된 놈으로 교체하라고 하고 싶다.
직구조립하면 이름난 최상위 케이블 1개 값도 안된다.
직구할 때는 총액이 15만원을 넘지 않도록 최대한 분산주문하시라.
세금 살벌합디다.
- 배선
컴퓨터,DAC,앰프 3개의 벽체콘센트는 따로따로 해주어 한다.
같은 콘센트에 연결하게되면 간섭으로 인한 거북함이 나타난다.
2. source
- OS
Window라면 Server 2012로 교체하시라.
다른 OS로는 깊이있게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foobar2000 - jplay ultrastream으로 구동하면
Hibernate처럼 멎어버리는 불편함도 없고 들을만하다.
jplay를 안쓰고 ASIO만으로도 window 7,8보다는 훨씬 낫다.
- format
PCM의 경우는
44.1,88.1,176.4,352.8
48,96,192,384
DSD의 경우는
DSD64,DSD128(256,512)
이렇게 있지만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 녹음 되었다면 CD음질부터 들어줄만 하지만
솔직히 352.8 이상, DSD는 128이상일 때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그러니 고음질 포맷을 들어본 이들은 더 높은 일테면
DSD1024,2048로 듣는 방법은 없냐는 식이다.
- DAC
PC로는 다양한 AV소스(파일,인터넷,TV)를 플레이 하므로 모두 지원해야 한다.
전원은 직류입력을 추천(케이블값 아끼시길).
DAC칩 이후 아날로드 단이 단단한 놈을 추천한다.
네트워크 플레이는 글쎄 Gbps라면 NAS정도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
tera bps 유.무선 네트워크이 자유로워질 때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프리,파워,스피커 등을 언급하지 못한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간도 없고, 기회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돈문제인가 싶다.
pc-fi에게는 잘 만들어진 액티브 모니터스피커를 추천한다.
네트워크 오디오 드라이버-이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Server 2012로 제대로 세팅해두고
네트워크로 드라이빙할 수 있다면 최적이지 않을까?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개발자에게 야근은 미친 짓이다
어떤분야에 10년이상의 일을 하다보면 많을 것들이 공부된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된다.
소위 IT기술이라는 구현부분에 여러모습의 프로그래머들이 있다.
그들은 정확히 자본이 이익을 탐닉할 수 있는 도구적측면이 컸다.
대량생산의 산업화시대에도 같은 논리가 있었다.
루틴한 일은 기계가 하고, 사람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결과는 기계값보다 인건비가 싸면 사람쓴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발견하고 실현되었으면 하는 가치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가치없는 허상의 거품들만 실상을 오염시키며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그랬던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는 사회적 결정을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가치가 아니다.
투표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제반문제는 다 그 구성원의 결정이다.
즉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결과물인 것이다.
아래 기사를 읽다가 생각이 나서 끄적거린 것.
개발자에게 야근은 미친 짓이다
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40218180039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며칠 야근을 하게 되었다. 아침 8시부터 코딩을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몸이 견딜 수 없을 때 잠을 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부터 코딩을 시작했다. 미국 동부에 폭설이 내려서 아침저녁으로 눈을 치워야 했던 것은 덤이다. 이런 식으로 끝까지 ‘달린’ 것은 5년 만의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야근은 미친 짓이다.
프로그래머가 정신을 집중해서 양질의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의 최대치는 하루에 2~3시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나는 아침 9시에 사무실에 도착하고 오후 6시에 퇴근을 한다.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에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미팅도 해야 하고, 클라이언트도 만나야 하고, 친구들과 잡답도 해야 하고, 커피를 마시느라 들락거리기도 해야 하고, 개인적인 용무도 봐야 한다.
이런저런 시간을 다 빼고 나면 손끝에서 코드를 뽑아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의 최대치는 5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 5시간만 제대로 집중해서 코드를 만들어내면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그나마 여기에서 5시간은 실제로 코딩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럼 6시에 퇴근하는 대신 밤 11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즉, 야근을 하면) 코드를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5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산성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상물림들의 셈법이다.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자’와 코드를 짜는 프로그래밍을 같은 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착각이 참이면 이런 식의 셈법도 성립한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양’의 노동이 아니라 ‘질’의 노동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일이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 프로그래머의 두뇌는 CPU 레지스터와 메모리의 확장된 버전이 된다. 수많은 변수의 상태와 상호작용이 두뇌에 기억되고, 각종 클래스와 패키지 이름, 구현해야 하는 알고리즘 개요, 다른 하위시스템과의 상호작용, 방금 수정한 버그 내용, 사용자 요구사항 내용 등이 모두 기억된다.
1차원적인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한 내용들이 서로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판단해야 한다. 엉망으로 꼬이고 엉킨 실타래의 끝을 놓치지 않고 추적하는 것이다. 열 개의 볼링핀을 저글링하는 서커스 단원처럼 한순간도 잡생각을 할 수 없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런 수준의 집중력을 하루에 2~3 시간 이상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괴물 같은 사람이라도 5시간이 한계다. 사람에 따라서 하루 평균 2~3시간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을 특정한 날에 몰아서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대신 그런 사람은 더 긴 휴식시간을 필요로 한다.
핵심은 지속가능한(sustainable) 양질의 집중력을 하루 평균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10시간 내내 양질의 코드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그날 쓸 분량을 다 쓰고 나면 당연히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와 잡담을 나누어야 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에너지가 바닥난 사람을 컴퓨터 앞에 앉혀두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자코 앉아있기”말고 아무 것도 없다. 키보드 위에서 영혼이 담기지 않은 손가락 놀림만 분주하다.
그래서 '코드를 짜기 위한 야근'이라는 표현은 '따뜻한 얼음'이나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드가 아니라 버그만 생산한다.
일하는 시늉만 무성하고 실제로 일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근을 하면서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낮에 집중력을 발휘할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경우로 국한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프로그래머가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의 노동을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프로그래머의 인권이나 노동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공’을 원한다면 프로그래머를 양계장의 닭처럼 쥐어짜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성 하락도 문제지만, 정상적인 시간과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암시장이 형성되는 것도 큰 문제다. 프로젝트 관리자나 물주들이 프로그래머들의 ‘야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의존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단가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산정된다.
이러한 암시장 효과로 인해서 프로젝트 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로그래머들의 개인적인 삶이 담보로 저당 잡힌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찾는 것은 알래스카에 가서 야자나무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론을 내려 보자. 그대가 프로그래머라면 하루에 2시간 이상 코드를 생산할 수 없다고 해서 조금도 자책하지 않기 바란다. 2시간 이상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대의 상사가 야근을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되 '시체처럼 앉아있기' 이상을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야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다른 모든 프로그래머도 그대와 다르지 않다. 원래 다 그런 것이다.
그대가 프로그래머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라면 (프로젝트 관리자든 아니면 프로젝트에 돈을 대는 물주든) 하루에 2시간 이상 코드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바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꺼이 야근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워하기 바란다.
그 사람은 프로그래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좀비다. 언제 그대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영혼 없는 존재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된다.
소위 IT기술이라는 구현부분에 여러모습의 프로그래머들이 있다.
그들은 정확히 자본이 이익을 탐닉할 수 있는 도구적측면이 컸다.
대량생산의 산업화시대에도 같은 논리가 있었다.
루틴한 일은 기계가 하고, 사람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결과는 기계값보다 인건비가 싸면 사람쓴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발견하고 실현되었으면 하는 가치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가치없는 허상의 거품들만 실상을 오염시키며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그랬던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는 사회적 결정을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가치가 아니다.
투표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제반문제는 다 그 구성원의 결정이다.
즉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결과물인 것이다.
아래 기사를 읽다가 생각이 나서 끄적거린 것.
개발자에게 야근은 미친 짓이다
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40218180039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며칠 야근을 하게 되었다. 아침 8시부터 코딩을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몸이 견딜 수 없을 때 잠을 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부터 코딩을 시작했다. 미국 동부에 폭설이 내려서 아침저녁으로 눈을 치워야 했던 것은 덤이다. 이런 식으로 끝까지 ‘달린’ 것은 5년 만의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야근은 미친 짓이다.
프로그래머가 정신을 집중해서 양질의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의 최대치는 하루에 2~3시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나는 아침 9시에 사무실에 도착하고 오후 6시에 퇴근을 한다.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에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미팅도 해야 하고, 클라이언트도 만나야 하고, 친구들과 잡답도 해야 하고, 커피를 마시느라 들락거리기도 해야 하고, 개인적인 용무도 봐야 한다.
이런저런 시간을 다 빼고 나면 손끝에서 코드를 뽑아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의 최대치는 5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 5시간만 제대로 집중해서 코드를 만들어내면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그나마 여기에서 5시간은 실제로 코딩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럼 6시에 퇴근하는 대신 밤 11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즉, 야근을 하면) 코드를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5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산성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상물림들의 셈법이다.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자’와 코드를 짜는 프로그래밍을 같은 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착각이 참이면 이런 식의 셈법도 성립한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양’의 노동이 아니라 ‘질’의 노동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일이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 프로그래머의 두뇌는 CPU 레지스터와 메모리의 확장된 버전이 된다. 수많은 변수의 상태와 상호작용이 두뇌에 기억되고, 각종 클래스와 패키지 이름, 구현해야 하는 알고리즘 개요, 다른 하위시스템과의 상호작용, 방금 수정한 버그 내용, 사용자 요구사항 내용 등이 모두 기억된다.
1차원적인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한 내용들이 서로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판단해야 한다. 엉망으로 꼬이고 엉킨 실타래의 끝을 놓치지 않고 추적하는 것이다. 열 개의 볼링핀을 저글링하는 서커스 단원처럼 한순간도 잡생각을 할 수 없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런 수준의 집중력을 하루에 2~3 시간 이상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괴물 같은 사람이라도 5시간이 한계다. 사람에 따라서 하루 평균 2~3시간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을 특정한 날에 몰아서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대신 그런 사람은 더 긴 휴식시간을 필요로 한다.
핵심은 지속가능한(sustainable) 양질의 집중력을 하루 평균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10시간 내내 양질의 코드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그날 쓸 분량을 다 쓰고 나면 당연히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와 잡담을 나누어야 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에너지가 바닥난 사람을 컴퓨터 앞에 앉혀두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자코 앉아있기”말고 아무 것도 없다. 키보드 위에서 영혼이 담기지 않은 손가락 놀림만 분주하다.
그래서 '코드를 짜기 위한 야근'이라는 표현은 '따뜻한 얼음'이나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드가 아니라 버그만 생산한다.
일하는 시늉만 무성하고 실제로 일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근을 하면서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낮에 집중력을 발휘할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경우로 국한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프로그래머가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의 노동을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프로그래머의 인권이나 노동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공’을 원한다면 프로그래머를 양계장의 닭처럼 쥐어짜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성 하락도 문제지만, 정상적인 시간과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암시장이 형성되는 것도 큰 문제다. 프로젝트 관리자나 물주들이 프로그래머들의 ‘야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의존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단가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산정된다.
이러한 암시장 효과로 인해서 프로젝트 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로그래머들의 개인적인 삶이 담보로 저당 잡힌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찾는 것은 알래스카에 가서 야자나무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론을 내려 보자. 그대가 프로그래머라면 하루에 2시간 이상 코드를 생산할 수 없다고 해서 조금도 자책하지 않기 바란다. 2시간 이상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대의 상사가 야근을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되 '시체처럼 앉아있기' 이상을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야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다른 모든 프로그래머도 그대와 다르지 않다. 원래 다 그런 것이다.
그대가 프로그래머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라면 (프로젝트 관리자든 아니면 프로젝트에 돈을 대는 물주든) 하루에 2시간 이상 코드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바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꺼이 야근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워하기 바란다.
그 사람은 프로그래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좀비다. 언제 그대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영혼 없는 존재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4년 2월 13일 목요일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윈도우서버 2012 R2 - 음질 대단합니다.
Audiophile Optimizer 라는 것을 검색하다보면
Windows Server 2012 R2 essential 버전의 core 모드를 설치하고
그 중에서도 불필요한 service, process, thread 들을 제거하고 구동하고
음질이 향상된 이야기들이 있다.
(심지어는 tweak된 pc를 팔기도 한다.)
그것들은 차차 해보기로 하고 윈도우서버 2012 R2(어떤 버전이라도)만 설치하더라도
windows7은 물론 windows8.1과 비교할 수 없는 향상이 있으며,
위의 방법으로 tweak하면 그 이상으로 변한다고 합디다.
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굴러다니는 Datacenter(가장 무거운 버전)을 설치하고
foobar, dac driver, asio, upsampler 등을 설치하여 들어보았다.
과연, windows7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꽤나 오래된 amd propus 허접 데스크탑에 돌렸으니
리니어전원 마이크로 데스크탑이나,
요즘의 울트라북 같은 배터리 구동상태라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윈도우7, 8.1 처럼 편리하지 않다.
하지만 거품을 뺏으니 컴퓨터적으로 더 간단하다.
네트워크를 비롯한 드라이버는 웬만큼 잡히고
비디오 드라이버도 64비트를 가지고 있다면 .inf를 찍어서 설치하면 된다.
문제는------- 초보자에게 UI나 기능등이 달라서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것.
또하나, windows 7과 동일하게 DSD를 설정을 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것은 푸는 법을 찾아야겠다.
하는 잘 만들어진 작은 노트북을 사서 구동시키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지만,
pc로 모든 A.V.T를 해결하는 입장에서
드라마, 영화감상을 위해서는 그래픽성능도 중요한데 갈등이다.
뭏튼 pc의 접지만 단단히 잡아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줄 것이며,
DAC전의 소스단에 집중하는 pc-fi 반드시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tweak하면 리니어에 대한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Windows Server 2012 R2 essential 버전의 core 모드를 설치하고
그 중에서도 불필요한 service, process, thread 들을 제거하고 구동하고
음질이 향상된 이야기들이 있다.
(심지어는 tweak된 pc를 팔기도 한다.)
그것들은 차차 해보기로 하고 윈도우서버 2012 R2(어떤 버전이라도)만 설치하더라도
windows7은 물론 windows8.1과 비교할 수 없는 향상이 있으며,
위의 방법으로 tweak하면 그 이상으로 변한다고 합디다.
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굴러다니는 Datacenter(가장 무거운 버전)을 설치하고
foobar, dac driver, asio, upsampler 등을 설치하여 들어보았다.
과연, windows7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꽤나 오래된 amd propus 허접 데스크탑에 돌렸으니
리니어전원 마이크로 데스크탑이나,
요즘의 울트라북 같은 배터리 구동상태라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윈도우7, 8.1 처럼 편리하지 않다.
하지만 거품을 뺏으니 컴퓨터적으로 더 간단하다.
네트워크를 비롯한 드라이버는 웬만큼 잡히고
비디오 드라이버도 64비트를 가지고 있다면 .inf를 찍어서 설치하면 된다.
문제는------- 초보자에게 UI나 기능등이 달라서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것.
또하나, windows 7과 동일하게 DSD를 설정을 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것은 푸는 법을 찾아야겠다.
하는 잘 만들어진 작은 노트북을 사서 구동시키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지만,
pc로 모든 A.V.T를 해결하는 입장에서
드라마, 영화감상을 위해서는 그래픽성능도 중요한데 갈등이다.
뭏튼 pc의 접지만 단단히 잡아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줄 것이며,
DAC전의 소스단에 집중하는 pc-fi 반드시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tweak하면 리니어에 대한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2014년 1월 9일 목요일
나방눈 반사방지 기술 - 눈아프지 않는 모니터 절실해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1/09/0200000000AKR20140109131700063.HTML
기사가 사라질지 모르니 조금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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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눈 모방' 반사방지 기술 개발<기계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1/09/0200000000AKR20140109131700063.HTML
기사가 사라질지 모르니 조금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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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눈 모방' 반사방지 기술 개발<기계연>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한국기계연구원은 나노자연모사연구실 임현의 박사팀이 나방눈을 모방해 빛의 반사방지 표면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자기 방어를 위해 눈에 빛이 나지 않도록 반사방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 화학적인 코팅을 입히지 않고도 반사방지 성능을 갖춘 나노구조물을 개발했다.
층층이 코팅할 필요가 없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표면에 나노구조물을 고르게 코팅하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나 성능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디스플레이나 반사방지 필름, 렌즈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나노 분야 권위 있는 저널인 '나노스케일'(Nanoscale) 및 'ACS 에이시에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인터페이스'(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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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눈이 아프지 않은 디스플레이가 가능할까?
기술이야 어떻든 눈이 아프지 않은 모니터가 절실해...민감한 눈
주로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자기 방어를 위해 눈에 빛이 나지 않도록 반사방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 화학적인 코팅을 입히지 않고도 반사방지 성능을 갖춘 나노구조물을 개발했다.
층층이 코팅할 필요가 없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표면에 나노구조물을 고르게 코팅하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나 성능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디스플레이나 반사방지 필름, 렌즈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나노 분야 권위 있는 저널인 '나노스케일'(Nanoscale) 및 'ACS 에이시에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인터페이스'(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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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눈이 아프지 않은 디스플레이가 가능할까?
기술이야 어떻든 눈이 아프지 않은 모니터가 절실해...민감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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