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6일 금요일

자비 慈悲 - 뜻이 참 묘하여...

慈悲

玆 검을 자 心

非 아닐 비 心



玆 古子의 형태가 여럿인데 ,,, 검을 현 2개를 玄玄 붙였네.
대체로 무성하다, 검다, 이.. 의 뜻을 새긴다.
玄은 가물다, 아득하다, 검다.

非 아니다.


慈悲心이란게 통설의 뜻이 아닌 것 같다.


좋은 마음은 없는 것 같지.

2024년 1월 6일 토요일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다잖아...

그러면

말,마음,생각 이런 거 아니란 뜻이잖아...


좋은 몸 없는 것 같고

좋은 맘 없는 것 같고

좋은 말 없는 것 같다.

좋은 생각 없는 것 같고...


그 무엇도 아니지만 아닌 것도 없다.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불교는 불살생계(不殺生戒)에서 끝났다.

지금 시대는 그 때와는 달라서 식물도 생명이란 걸 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생물도 다 발견되어 미생물이라 한다.
흡수하고 체를 유지하고 배출하는 행이 있는 모든 것이다.
에너지로 보면 작용반작용, 응력이니 생명아닌 것이 없게 된다.

인간의 먹이로 보면 식물을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때다.
추위,더위에 몸을 유지해야 하는데 요구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체제는 가만히 있어도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
먹는데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면 가난한 사람이다.

계를 극으로 하면 존재할 수 없다.
다 어디선가는 훔쳐온 것이니까.
몸을 유지하는 것은 곧..(가장 나쁜 의미의)...이다.

끊임없이 자기 정당화 핑계만 대는 인간들로서야

...

아주 심각한 경우에 ...
돼지를 먹어주지 않는다면 돼지가 얼마나 서운해 하겠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많이 텄다 싶은 생각이란 것이
생명을 주고받는 것을 생태계라고 용감하게 말한다면
그는 기꺼이 자기 몸 유지하는 동안 해쳐왔던 생명체만큼 몸으로 나서 돌려줘야 하리라.

계戒에 불살생不殺生이 있는데
불교에 묻는다
살생하지 않고 몸의 유지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불교는 끝난 것 아닌가?

계.정.혜 순인데

계에서 벌써 성립불가로 어긋났으니 말이다.
먹지 않는 불자,승,보살이 증험한다면 모를까... 불교는 성립불가다.

경전을 보면, 식물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고
인식도 동물과 많이 다르다.

그럼 무시가 답인가?

말마따나 불이不二랍시고 분별하지 않으면 그만인가?
둘이니까 자꾸 불이不二라고 우기는 것 아닌가?

살생하되 살생이란 생각을 안하면 그만이라고?
그런 개(편리한)법이 있는가?
살생에도 그정도면 그럼 세상법은 ...
그래서 본래 무법천지인가?

생사에 자유롭다는 말에 대해 나는
나의 생사와 자연물들의 생사를 달리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래서 생사에 어쩌구 저쩌구 안한다.

생사가 그저 개념일 뿐이라 말한다면... 아~

몸 있고 근.경.식이 일어났으니
몸 흩어지면 그만일 것인데 다시 뭘 말한단 말인가?

모이면 흩어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걸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모였을 때 흩어짐을 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대별의 쌍이라는 걸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나는 아직 仙,佛을 만난 적이 없다.
증험의 일도 쉽지 만은 않다.

나가 있고 세상이 있다... 그래서 세상은 내가 만들었다?
지꼴대로 보고 사는 것이 자기세상이다.?

이것은 다 관점의 전환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다.

그걸 보고 있는 '이것'은 뭐냐?

이것도 식이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단지 있고 없고의 개념이 몸 이후에 생긴 것이란 걸 지적하는 말이고
지각하는 '이것'이다. 또는 '작용'하는 이것이다.고 한다.

이걸 몰랐던 사람이 있었나? 눈이,보는 마음이 다른데 가 있었겠지.

이것이 여실하다고 해도
본래부터 이랬기 때문에
석가가 다시 이걸 말했고 이것 뿐이라고?

그래서 좀 뭐하니 견도,수도,무학도를 다시 말한다?
수행도 말며, 다시 할 것도 없다면서...
분별에 떨어졌다고 하는 그것은 분별 아닌가?

나는 아직 아득하고 황홀한 상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래서 불살생계(不殺生戒)에서 끝났다.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선禪 한다는 이야기 중에서 견見 후 견해에 빠지는 오류...

선禪 언어도단 말로는 이르름이 끊겼다는 말이다. 

그래 놓고선 수 많은 말 말 말 말 말 말....

그래서 그 견見하면 '이게 뭐여 ~' 할 정도로 헛헛한데...

그렇게 온갖 ... 로 뭐나 있는 듯 팔았던 것이 이거냐? 할 정도다.

경험의 작용이 있다면 경험하는 주체를 말한 것이다.

주체도 객체도 없는 작용...


그 다음의 견해가 문제다.

견해, 입장 아님이 없다.

특히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다.


이렇다 저렇다 이러니 이렇다 저러니 저렇다. 


그것에 대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그것이 또는 이것이 진리라면 

이 진리가 문제냐, 업이든 오해든 우리의 체험이 문제냐...

이 체험하고 해석하고 편향하고 이것이 문제다.

곧장 가리키는 것은 쉽다.


문제는 원인도 이유도 모르고 실시간으로 일어나며 일체 개념으로도 정의가 불가한데...

뒤집어 언어로 그걸 형용하여 헛갈리게 만드니 곧장 자각하는 자.


여기서부터는 분명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 스스로가 겪는 이 난감한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건 이것이건 뭐라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살이의 곤난함이다.

그래서 풀어야 할 것은 곤난함이다.

그것이 마음의 문제든 몸의 문제든

먹는 것이건 살 곳이건 닥치는 이 지점이 이야기 할 것이다.


모두가 이것 그것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제의 것들이 편향을 만들고 기억을 만들고 

이 작용을 다시 좋아함 꺼림 무서움 두려움 이런 것을 렌즈처럼 회로처럼 걸러낸다.

당연히 

몸.맘을 작용이 있으니 살려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좋은 기억이 고통의 기억이 거쳐져 들고 난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삶이 

먹이든 편안함이던 삶의 여건의 불편함,괴로움으로 된 것이라..


몸이 필요로 하는 걸 먹음에 일말의 장애가 없으면 무엇이 문제랴

쉬어야 할 곳 조용히 머므름에 장애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랴.

비용이 걱정이 없고 공해의 걱정이 없다면 겨울추위가 뭐가 문제가 되랴...


지금 이 시대에는 예전에 그렇게 고통스럽던 해결되어서 더 이상 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공해나 방식이나 이런 문제는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


다른 것들은 그 눈으로 봐도 스스로 잡고 싶어서 잡고 가는 것을 뭐라 시비랴.
다만 그것들은 자아상으로 타 존재.생명에 피해를 주니 그 지점은 엄격해야 할 것이다.

원래 다 있으니 잠시 내려지면 곧장 알아 보고

그 이후는 그 작용으로 본으로 삶의 문제도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라.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모두 생이지지生而知之 - 차별,분별,평등

생이지지(生而知之) - 말을 만들고 뭐라도 덧씌워 분별,차별 해보려고...
살아있는 몸은 어디서 왔나? 죽은 몸은 어디로 가던가?
나투면서 생이지지(生而知之)다.
몸 있기 전에는 몸으로 사는 지금은 몸 없어지면...
일이관지 일이관지 하지만 무엇이 일인지 그걸 몰랐지

사람에, 사람살이에 이런저런 이름 붙인다 하더라도 이름일 뿐이지...

헤아릴 수 없는 경험,체험,경계,기억도 다 그것일 뿐이다.

원만한 몸이면 없는 것 같고, 마음도 원만하여 없는 것 같고,

말도 없고, 뜻도 없고...

저것은 저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맛을 알아야 평등도 보이는 거지

번뇌 열반 선정 - 선禪의 뜻

번뇌 선정 열반


번뇌가 없는 상태가 열반이라는데


선, 정 에서 정은 살아있는 열반을 상태랄까.


번뇌란 고요한 선을 배경으로 하니 

선은 집중과 고요함이 함께하고

번뇌는 생각이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에너지를 쓰니 

몸도 그에 맞춰야 하니 번거롭기가 이를 데 없다.

할 수 있을 만큼만 번뇌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선은 없는 것 같은 균형의 극치라, 번뇌에 균형과 복원이다.


말로 하니 다 뒤집혀 에효~


선정禪定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뜻을 보면
두 개의 글자가 합쳐진 것이다.

선禪은 관觀에 해당하고 - 위빠사나 - 사띠
정定은 멸滅, 적寂, 열반涅槃에 해당한다. - 사마띠

선禪이란 의미는 열반의 정定에 비해 활活한 속제에 해당한다.
글자는 보일 시示 뜻에  선單 오랑캐 '선'의 소리를 쓰는 글자다.
즉 시示는 보인다, 보여 준다... 란 뜻이다.

시示 보이는 것이고 견見은 봄이다.

선禪과 정定은 별개인 듯 하지만 둘이 쌍인지 하나인지 잘 모르겠다.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수다원(예류자預流者), 사다함(일래자一來者) - 윤회에 대한 이야기일까?

불교가 윤회에 휩쓸리다 보니 

수다원(예류자預流者) - 신이나 인간 중에 일곱 번 태어나서 윤회한 뒤 괴로움이 끝나는 자
사다함(일래자一來者) -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내는 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수다원, 사다함도 열반에 대한 분명한데 7번, 1번 윤회한다는 걸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열반에서 튕겨 나와 속세에 번뇌에 시달리는 정도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사에 경계,구분이 없는 것이 열반이라면
경계에 떨어지는 정도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나함은 이 세상보다 열반으로 중심이 간 상태.

아라한은 번뇌가 사라져 열반에 머무는 자


윤회라는 것도 이 생에서 들어 아는 것이고 보면
이전 생, 지금 생, 다음 생에 대해 분명하지 않다면 
내려 놓는 것이 마땅하다.

윤회한들 안한들 뭘 어쩌자는 것인가. 놓는 것 밖에 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