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언어도단 말로는 이르름이 끊겼다는 말이다.
그래 놓고선 수 많은 말 말 말 말 말 말....
그래서 그 견見하면 '이게 뭐여 ~' 할 정도로 헛헛한데...
그렇게 온갖 ... 로 뭐나 있는 듯 팔았던 것이 이거냐? 할 정도다.
경험의 작용이 있다면 경험하는 주체를 말한 것이다.
주체도 객체도 없는 작용...
그 다음의 견해가 문제다.
견해, 입장 아님이 없다.
특히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다.
이렇다 저렇다 이러니 이렇다 저러니 저렇다.
그것에 대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그것이 또는 이것이 진리라면
이 진리가 문제냐, 업이든 오해든 우리의 체험이 문제냐...
이 체험하고 해석하고 편향하고 이것이 문제다.
곧장 가리키는 것은 쉽다.
문제는 원인도 이유도 모르고 실시간으로 일어나며 일체 개념으로도 정의가 불가한데...
뒤집어 언어로 그걸 형용하여 헛갈리게 만드니 곧장 자각하는 자.
여기서부터는 분명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 스스로가 겪는 이 난감한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건 이것이건 뭐라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살이의 곤난함이다.
그래서 풀어야 할 것은 곤난함이다.
그것이 마음의 문제든 몸의 문제든
먹는 것이건 살 곳이건 닥치는 이 지점이 이야기 할 것이다.
모두가 이것 그것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제의 것들이 편향을 만들고 기억을 만들고
이 작용을 다시 좋아함 꺼림 무서움 두려움 이런 것을 렌즈처럼 회로처럼 걸러낸다.
당연히
몸.맘을 작용이 있으니 살려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좋은 기억이 고통의 기억이 거쳐져 들고 난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삶이
먹이든 편안함이던 삶의 여건의 불편함,괴로움으로 된 것이라..
몸이 필요로 하는 걸 먹음에 일말의 장애가 없으면 무엇이 문제랴
쉬어야 할 곳 조용히 머므름에 장애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랴.
비용이 걱정이 없고 공해의 걱정이 없다면 겨울추위가 뭐가 문제가 되랴...
지금 이 시대에는 예전에 그렇게 고통스럽던 해결되어서 더 이상 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공해나 방식이나 이런 문제는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
다른 것들은 그 눈으로 봐도 스스로 잡고 싶어서 잡고 가는 것을 뭐라 시비랴.
다만 그것들은 자아상으로 타 존재.생명에 피해를 주니 그 지점은 엄격해야 할 것이다.
원래 다 있으니 잠시 내려지면 곧장 알아 보고
그 이후는 그 작용으로 본으로 삶의 문제도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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