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지해야 할 것은 석가가 말하는 부분의 불경에서는
사유전개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논리로 타파하고 있다.
(요즘의 과학에서 쓰는 논리라는 도구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
마음이란 것을 비추어보기 위한 도구로서의 심경(心經)은
리드미컬한 반복구조 생략구조 서술구조를 갖추고 있다.
12연기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순(順)역(逆)으로 전개되고 소멸됨을 애매모호한 마음이란 것의 작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
시(是) 제법공상(諸法空相)...
심경에서 논리적 전개의 근거는 제법공상인데
제법공상의 예시로서 색불이공...역부여시이고
이것은 가름으로 대표되는 색(色)과 가름없는 공(空)이 다르지 않다.로 보는
것으로부터 유추된다.(정밀한 부분이 있지만 생략...)
소위 대승(大乘) 사상의 기초가 유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 그런데
학자,학술가가 아니고 수행자라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 입장이 다르다.
수행자는 행하고 증명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색(色), 공(空)이 다르지 않다. 쯤 오면
학자, 학술가는 더 이상할 짓이 없다.
모든 개념을 와해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콱 막혀 버린다.
대개 학자,학술가의 leading을 받아왔던 일반인들도
여기서 맹~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행자는 여기서 단초를 잡을 수 있다.
왜 색불이공(色不異空)이 공불이색(空不異色)보다 먼저 나올까.
학자,학술가는 앞뒤가 바뀌어도 같지 않느냐.라고 할 지 모르지만
수행자는 그것이 아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이 되고 공불이색(空不異色)이 되고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되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되고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역부여시(亦復如是)구나
그래서 색.수.상.행.식도 다 이와 같구나.
가 되어야 수행자다.
이해를 위해서는 12연기를 다시 참조하게 될 것이다.
색.수.상.행.식은 주요 작용 말하는 것이고
12연기는 전개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로서 내면에 흐르는 마음.의식과
그것으로 발생하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눈치채야 한다.
빌미를 잡고 모든 이식된 분별관념을 제거해 가다보면
혼란을 겪을 수도 완공에 빠질 수도 있고 팽개쳐 버릴 수도 있다.
아주 거치른 단계를 지나서 '이제 뭐가 뭔지 좀 알아보겠네' 쯤에
너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아서 무릎꿇고 자포자기 할 수도 있다.
이때 잘 살펴야 한다. 심중(心中).관점(觀占)이 옮겨져야 한다.
사실은 기존 관점.체계가 허물어져서 혼란도 온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거두어지는 것이 있어서 조금 더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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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연 키워드라 가면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色)은 '물질'이라고 한다. '사물'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일반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공(空)은 '무자성' 독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개념으로 표현되어질 수도 있다.
다시 새겨보면 상대개념도 아니다.
인식체계의 현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된다.
(요즘의 초미시 과학이란 것으로 이해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보다는 보이지도 않는 단위의 물질을 이야기하는
초미시 과학이란 체계는 개념의 세계이다.는 것을 지목하는 것이다.
초미립자 가속기를 가지고 매일 매일
실험하고 추적하고 추론하고 증명하고 하는 것이 생활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것은 개념의 세계일 뿐이다.
그 일부분이 일상생활의 상품화된 물건으로 온다.)
다시 인식체계 부분만 물질이란 것이 비춰지는 작용과 그 부대작용을 살핀다.
그러면서 다시 드러나는 이 인식체계.인지체계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인식체계.인지체계를 빠져나가 살펴보면 어떨까?
수행자의 접근방식이란 이런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인식체계.인지체계를 걷어 버리면 어떨까?
스스로 걷어낼 힘이 된다면 빌미를 잡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인식체계가 겹쳐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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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뇌과학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이름으로
다음 세대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내 눈에는 농사짓사람이나 미시과학자나 천체물리학자나
다 똑 같아 보인다.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다만, 사회체계가 편파적이고 왜곡적이다.
인류의 당면과제는 에너지.식량.그것을 공급하는 체계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문명상 언제나 당면과제였다.
이것이 기초이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 수행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수행의 기초가 잘 된 사람이
공공서비스와 정치등 사회체계를 이루는 역할에 배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자연계에 인간이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문명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너무나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거나, 동물을 부리고, 인간을 부리는 시대는 정점에 이른 것 같다.
이대로는 더 나빠질 것이 자명하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쓰고 인간 닮았으면 빤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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