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1일 토요일

정도전 - 신분제 고착의 성리학 종교주의자 였을 뿐이다.

성인급 인물(석가 소크라테스 노자)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인물들은 사물과 인간과의 차별도 하지 않았다고 본다.

조선 건국은 불만이 많은 세력들의 규합을 통한
혼란한 교려말 군인들의 쿠데타였다.

쿠데타 세력은 고개를 드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폭력에 기반한 독재는 모든 면을 왜곡시키면서 부패한다.

정도전에 대해 때로는 한명회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들도 그만한 탐욕이 있는데 실현하지 못해서
'한 세상 기회를 잡고 한판 잘 놀다갔다'고 여겨는 인간들이
투영하여 글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어 부추기면
냉큼 반응을 하는 현상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이란 것을 위해서 언제든
타인 타자 사물 자연에 대해 해악질을 서슴지 않는다.
더 센 놈을 향할까? 항상 약자라로 판단되는 것을 향해...
그것도 생물현상의 기본이 되는 몸, 식량, 주거 등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만 골라서 한다.

왜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 탐욕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꼴랑하는 짓이란게 협박 폭력이다.

정도전이란 드라마에 감동하는 인간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책에 언급된 주희와 정도전 구절..

윤휴와 침묵의 제국

서얼 허통

공자와 맹자는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지 않았다.
다만 인격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으로 분류했을 뿐이다.

주희가 신분제를 하늘이 정해준 경계로 분류하고 나서,
신분제가 마치 유학의 기본 이론인 것처럼 호도 되었을 뿐이다.

또한 조선 후기 예론이 성리학의 종주가 되면서
사회 요구와는 거꾸로 신분제가 강화되었다.

한 집안의 적자들 중에서도 장남과 차남 이하를 차별했으니
서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

성리학의 나라 조선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희(朱熹)가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성리학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희를 신성불가침한 성역으로 받들고 주자학을 공부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야 이용후생과 실학사상이 퍼지면서 학문의 영역이 다양화되었다.

예(禮)를 숭상하는 성리학은 다분히 교조적이어서 조선에 신분제를 고착시켰고,
그 결과 평민과 천민에 의한 사회 변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성리학은 고려시대에 안향을 시초로한 이색, 정몽주 등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정도전과 권근 등에 의해 조선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성리학을 정립한 인물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으로,
그의 1대 제자 김굉필(金宏弼)에 이어 2대 제자 조광조(趙光祖)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웠다.

조선시대에 관리가 되려면 성리학을 공부해야 했고,
의학이나 외국어는 중인들이 치루는 잡과에 속했다.

...

역사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이란게 겨우 이정도의 것들이다.

인간이란 짐승으로 태어나, 사람이 된다는 것.
속이지 않으면 지혜가 드러나 쉽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고지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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