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는 그 때와는 달라서 식물도 생명이란 걸 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생물도 다 발견되어 미생물이라 한다.
흡수하고 체를 유지하고 배출하는 행이 있는 모든 것이다.
에너지로 보면 작용반작용, 응력이니 생명아닌 것이 없게 된다.
인간의 먹이로 보면 식물을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때다.
추위,더위에 몸을 유지해야 하는데 요구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체제는 가만히 있어도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
먹는데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면 가난한 사람이다.
계를 극으로 하면 존재할 수 없다.
다 어디선가는 훔쳐온 것이니까.
몸을 유지하는 것은 곧..(가장 나쁜 의미의)...이다.
끊임없이 자기 정당화 핑계만 대는 인간들로서야
...
아주 심각한 경우에 ...
돼지를 먹어주지 않는다면 돼지가 얼마나 서운해 하겠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많이 텄다 싶은 생각이란 것이
생명을 주고받는 것을 생태계라고 용감하게 말한다면
그는 기꺼이 자기 몸 유지하는 동안 해쳐왔던 생명체만큼 몸으로 나서 돌려줘야 하리라.
계戒에 불살생不殺生이 있는데
불교에 묻는다
살생하지 않고 몸의 유지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불교는 끝난 것 아닌가?
계.정.혜 순인데
계에서 벌써 성립불가로 어긋났으니 말이다.
먹지 않는 불자,승,보살이 증험한다면 모를까... 불교는 성립불가다.
경전을 보면, 식물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고
인식도 동물과 많이 다르다.
그럼 무시가 답인가?
말마따나 불이不二랍시고 분별하지 않으면 그만인가?
둘이니까 자꾸 불이不二라고 우기는 것 아닌가?
살생하되 살생이란 생각을 안하면 그만이라고?
그런 개(편리한)법이 있는가?
살생에도 그정도면 그럼 세상법은 ...
그래서 본래 무법천지인가?
생사에 자유롭다는 말에 대해 나는
나의 생사와 자연물들의 생사를 달리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래서 생사에 어쩌구 저쩌구 안한다.
생사가 그저 개념일 뿐이라 말한다면... 아~
몸 있고 근.경.식이 일어났으니
몸 흩어지면 그만일 것인데 다시 뭘 말한단 말인가?
모이면 흩어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걸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모였을 때 흩어짐을 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대별의 쌍이라는 걸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나는 아직 仙,佛을 만난 적이 없다.
증험의 일도 쉽지 만은 않다.
나가 있고 세상이 있다... 그래서 세상은 내가 만들었다?
지꼴대로 보고 사는 것이 자기세상이다.?
이것은 다 관점의 전환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다.
그걸 보고 있는 '이것'은 뭐냐?
이것도 식이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단지 있고 없고의 개념이 몸 이후에 생긴 것이란 걸 지적하는 말이고
지각하는 '이것'이다. 또는 '작용'하는 이것이다.고 한다.
이걸 몰랐던 사람이 있었나? 눈이,보는 마음이 다른데 가 있었겠지.
이것이 여실하다고 해도
본래부터 이랬기 때문에
석가가 다시 이걸 말했고 이것 뿐이라고?
그래서 좀 뭐하니 견도,수도,무학도를 다시 말한다?
수행도 말며, 다시 할 것도 없다면서...
분별에 떨어졌다고 하는 그것은 분별 아닌가?
나는 아직 아득하고 황홀한 상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래서 불살생계(不殺生戒)에서 끝났다.